예수님은 박해하는 가다라를 떠나 배를 타고 본 동네로 돌아오셨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가르침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본 동네에서 다시 치유의 사역을 하셨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친구들이 침상채 들고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 중풍병자가 낫고자 하여 친구들에게 예수님께 데려다 달라고 요청한 것인지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설득해 데려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병자나 친구들 모두 예수님께 가면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작은 자”는 교만하지 않은 자를 뜻하는 것 같다. 낮은 자와 같다. 중풍병자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세리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중풍병자를 예수님은 의롭다고 하신 것이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이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기도를 함으로 자기상을 이미 받은 바리새인 같은 서기관들이 속으로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중풍병자가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는 이적으로 증명하셨다. 무리는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이 죄사함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사건도 기록한다.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이신 사건 다음에 자신 사건을 넣었다는 것은 어쩌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의롭다 함을 받은 세리가 자신임을 암시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하여간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마태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은 마태의 집에도 가셨다. (베드로의 집에도 가셨듯이) 그리고 마태의 집에서 다른 세리들과 소위 죄인들이 모여 예수와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자기 상을 이미 받은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직접 항변하지도 못하면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실 수 있느냐고 따졌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고 바리새인들에게 답을 하신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미 6)고 하신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확인하신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끼리 하이파이브를 주고 받을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스스로를 작은 자로 여기는 자, 낮은 자로 여기는 자, 그래서 예수 앞에 나오는 자를 구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