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14-26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자신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저들의 질문에는 예수님도 금식하지 않는 사람들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찌 알리요.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며 40일 동안 온전한 금식을 하셨던 분이셨다.

예수님은 산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 기도 금식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경고하셨다. 그런데 감히? 금식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예수님께 도전을 하다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임마누엘이라고 하셨다. 금식은 나는 죽고 온전히 주님만 사는 행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그래서 나의 삶을 주님께 위임하는 행위다. 따라서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시는 예수님도, 예수님이 함께해 주시는 제자들도 금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임마누엘은 결혼잔치라고 하셨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빼앗길 날이 이르면 그때에는 금식해야 된다고 하셨다. 만약 신랑되신 주님 뜻 대신 내  뜻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면 그때에는 금식해야 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복음이다. 예수님은 이 천국을 하나님나라를 임마누엘이라고 설명하신다. 이것은 새포주를 새부대에 담는 것이다. 임마누엘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사랑을 율법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새포도주를 옛부대에 담는 것이다. 잘못하면 율법의 참뜻도 사라지고 사랑도 잃어버리게 된다. 새포도주는 사랑으로 완성된 율법이다. 그리고 새부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사랑으로 완성된 율법을 행할 수 있다.

관리의 딸의 부활과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의 치유는 새포도주를 새부대에 담는 예다. 관리가 와서 내 딸이 방금 죽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시면 낫겠다고 요청한다. 예수님께서 관리의 딸을 고쳐주시러 길을 가실 때에 열두 해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에수님의 겉 옷만 만져도 낫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다. 관리와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물리적 접촉을 통한 임마누엘을 원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에 응답하셨다. 사람들은 임마누엘의 능력을 비웃을지 몰라도 임마누엘이야 말로 능력이다. 임마누엘의 능력을 믿음으로 관리의 딸도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임마누엘을 누렸다. 그리고 그 소문이 그 온땅에 퍼졌다. 임마누엘은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한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계실 때에는 임마누엘이 가시적으로 물리적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우리는 더 이상 모실 수 없다. 예수님은 하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돌보신다. 대신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보혜사 성령님의 주된 사역이 무엇인가. 주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고 주님의 가르침이 무슨 뜻인지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 말씀이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임마누엘은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는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말씀을 깨닫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다.

임마누엘을 원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