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1-17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바닷가에 앉으셨다.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은 바닷가 배에 올라가 앉으셔서 해변에 모인 무리들에게 여러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

비유의 첫번째가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간 이야기다. 씨뿌리는 자가 뿌린 씨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 위, 좋은 땅에 떨어졌다. 그 결과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다.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비유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중요했다. 예수님 주변에 있던 제자들은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 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이 (제자들 처럼) 허락된 사람들이 있으나 허락되니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답하신다. 천국의 비밀이 허락된 자는 천국의 비밀을 더 잘 알게 되지만 천국에 대해 아는게 없는 사람은 천국에 대해 전혀 모르게 된다고 하신다.

이것을 이사야의 말씀의 성취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 백성들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귀도 닫고 눈을 감았다고 하신다. 일부로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고 하신다. 들어서 깨닫고 보아서 알아 예수님께 고침을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하신다. 옛포도주에 길들여져 새포도주 맛보기를 거부한다고 하신다.

그와 반면에, 제자들은 새포도주를 맛보았다. 제자들은 보아서 알고 들어서 깨달을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제자들이 맛보는 포도주는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보아서 알고 들어서 깨닫고자 하였지만 결코 맛보지 못한 새포도주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비유는 쉽다. 어렵지 않다.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예수님의 비유는 해석이 굳이 필요없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이 비유가 얼마나 직유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깨닫기는 쉽지 않다.

농부는 왜 길가와 돌밭과 가시덜기 위에도 씨를 뿌릴까? 정상적인 농부라면 길가와 돌밭과 가시덜기 위에 일부러 씨를 뿌리지 않는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덜기를 개간하여 좋은 밭으로 기경한 후 씨를 뿌를 것이다. 예수님의 설명을 듣기까지 잠시 정지하기로 하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무엇의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예수님을 영접한 자와 영접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아닐까? 결국 임마누엘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의 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성령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의 지체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싹뚝잘린 내용이라…. 낼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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