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의 아들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는다. 헤롯은 예수를 세례요한의 부활로 생각했다. 요한의 부활의 능력이 예수 안에서 역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태는 요한의 죽음을 분명하게 기록한다.
요한은 헤롯이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한 일이 옳지 않다고 하였다가 헤롯의 미움을 사 옥에 갇혔다.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기 때문에 백성들의 난동을 두려워하여 옥에 가둬둔 상태였다.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이 춤으로 헤롯을 기쁘게 하자 헤롯은 무엇이든 달라는 대로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 헤로디아의 사주를 받아 요한의 목을 요구하고, 헤롯은 백성들이 난동을 부릴까 근심하였으나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요한의 목을 벤다. 이렇게 요한은 죽고 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장사했다.
요한은 죽었다. 세상적으로보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킹메이커로 자처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요한은 철저하게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았다.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자 요한은 물러나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요 3:28-29 새번역) 그리고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여야 한다.” (요 3:30 공동번역) 라고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요한은 신랑의 소리에 기뻐한 자였다. 그는 죽었다. 물론 그는 죽었으나 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하셨다.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했고 우리처럼 기록으로라도 듣지 못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태복음 본문은 어디가고 요한복음으로 또 마무리…
세상 임금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으면서 요한의 부활을 떠올렸다. 요한의 부활의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역사한다고 생각했고 신하들에게도 말했다. 그러나 오늘 핵심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남, 즉 부활이 아니라 요한의 죽음이다. 선지자 중이 선지자요,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도 죽는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는 영생한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서로 안다는 것은 사귐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삼위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사람은 죽은자요 사귐이 있는 자라야 영생하는 자다. 영생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