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후.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후 엿새 후다. 그러니 아직 지난 주 설교의 잔상이 남아 있을 때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다.
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가셨을까? 역발상으로 한다면 이들이 가장 배운 것이 없는 (구약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어부들이었기 때문에 말씀보다는 현장학습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도 같은 어부 출신이지만 세례요한의 제자였고 빌립도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소개할 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을 우리가 만났다고 한 것으로 보아 같은 마을 어부출신인 것 같지만 말씀에 대하여 아는 것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하여간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세 제자 앞에서 변화되어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도 빛과 같이 희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제자들에게 보였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지을까요?”라고 물어보았다. 예수님이 미쳐 답하시기 전에 하늘에서 소리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세 제자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심히 두려워 땅에 엎드렸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한 행동이 연상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셨다.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간 곳 없고 오직 예수님만 보였다. 내려 오는 길에 예수님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제자들은 서기관들에게서 주워 들은 것이 있어서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말이 맞다고 하시며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우했다고 답하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고난 받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때 제자들은 성경에서 미리 오리라 한 엘리야가 세례요한인 줄 깨달았다.
// 텔레포트일까?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모세와 엘리야을 만났다. 어떻게?는 궁금하지만 답이 없다. 그러나 왜?는 생각할 수 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뜻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이다. 거기에 말씀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셨다. 어부였던 세 제자에게는 이야기로만 들었던 구약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이해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천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변화산상에는) 황금 집은 고사하고 초막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베드로가 초막을 지을까요 하고 물었을까? 베드로가 한 유일한 반응이다. 거할 곳이 많지만 좋은 집이 있는 곳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다. 해 같이 빛나며 빛같이 흰 곳이다. 순결한 곳이다. 죄가 없는 곳이다.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만 있는 곳이다.
산에서 내려 오면서 제자들은 서기관들이 한 말을 기억하고 질문했다. 드디어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하나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묵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설명해 주신다. 하늘 음성의 마지막이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였다. 예수님이 없으면 구약의 말씀이 완성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참 뜻을 깨달을 수 없다. 이렇듯 변화산 사건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율법이 사랑으로 완성된 하나님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