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31-43

예수님은 또 비유로 말씀하신다. 천국은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 천국을 그냥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하지 않으셨다. 밭에 심기운 겨자씨 한알이다. 그것도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 위가 아니라 자기 밭에 심기운 겨자씨 한알이다. 앞의 비유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이 겨자씨는 백배 육십배 혹은 삼십배의 결실을 맺을 것이다. 모든 씨보다 작은 겨자씨는 자라서 풀보다 큰 나무가 된다. 공중의 새들이 둥지를 틀 나무가 된다. 결실뿐만 아니라 부수적인 역할도 하게 된다. 천국은 좋은 땅에 뿌려진 (심은) 말씀의 씨가 결실하는 곳이다. 천국은 순종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사람이다.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피조물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맛보게 된다.

또 비유로 말씀하신다. 천국은 한마디로 이렇다 정의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신다. 누룩과 같은 것이 아니고 밀가루 서 말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신다.  밀가루 서말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적은 양이지만 전부에게 영향을 미친다. 음… 누룩은 밀가루 전부가 누룩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단지 밀가루 전부가 누룩의 영향을 받는 것이 목표다. 누룩의 사명은 그것뿐이다.

예수님은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러 오신 분이시지만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구약의 성취라고 마태는 주석한다.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집에 들어가셨다. 제자들은 밭의 가라지 비유에 대한 해석을 예수님께 요청했다. 예수님이 설명하신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인자, 즉 예수님이시다. 밭은 세상(사람)들이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다. 천국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의 자녀를 뜻한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미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이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다.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라고 하신다. 세상 끝에 가라지는 솎여져 불살라질 것이고 곡식은 곳간에 거둬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가라지에 대해 보충설명 하신다. 가라지는 믿음에서 실족하게 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그들의 결국은 예수님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신 자들의 결국과 같다. 저들은 풀무 불에 던져져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대신 의인들은 (곡식을 의인이라고 설명하신다.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맺는 순종의 사람들이다.) 아버지의 나라 (천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신다.

천국은 순종하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마태복음 13:18-30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고 하신다. 귀 있는 자들은 들어야 한다.

길가에 뿌려진 천국 말씀은 악한 자가 와서 빼았는다. 돌밭에 뿌려진 천국 말씀은 뿌리가 깊지 않아 박해가 일어날 때 넘어진다. 가시떨기에 뿌려진 천국말씀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 열매 맺지 못한다. 천국 말씀은 오직 좋은 땅에서만 들어 깨달을 수 있고 보고 알 수 있다. 깨달아야 결실하여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은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나 좋은 땅을 사람에 비유하신다.

농부가 왜 좋은 땅뿐만 아니라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도 씨를 뿌리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모두 천국복음이 필요하다. 천국복음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기도 하고 죄인의 길에 서기도 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좋은 씨가 뿌려졌다고 해서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다. 결실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에게서 맺는다. 말씀을 듣고 깨달아 순종하는 사람이 좋은 땅이다.

모든 사람이 다 좋은 땅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길이라고 하셨다. 누가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이 적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좋은 땅이 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좋은 땅이라고 가르치신다. 너희들은 좋은 땅이다. 결국 천국은 천국말씀이 결실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곳이다.

그런데 천국은 좋은 씨만 (천국복음만) 뿌려진 곳이 아니라고 하신다. 주님은 좋은 씨를 (주의 말씀을) 뿌리시지만 원수는 몰래 가라지를 덧뿌린다고 하신다. 좋은 밭에 가라지도 보이는 이유다.

주님은 이 가라지를 함부로 뽑지 말라고 하신다. 원수가 한 짓이지만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도 있으니 추수때까지 나두라고 하신다. 추수때에 곡식에서 가라지를 솎아 내어 불사를 것이라고 하신다. 세상에서 농사 짓는 사람들은 안다. 힘들어도 가라지나 잡초나 미리미리 솎아 내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이것이 세상지혜다. 그러나 주님의 지혜는 심판하는 것이 주님께만 있다고 하신다. 천국은 나의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는 곳이다. 형제를 뽑을까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나보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라고 하신다.

어렵다.

마태복음 13:1-17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바닷가에 앉으셨다.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은 바닷가 배에 올라가 앉으셔서 해변에 모인 무리들에게 여러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

비유의 첫번째가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간 이야기다. 씨뿌리는 자가 뿌린 씨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 위, 좋은 땅에 떨어졌다. 그 결과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다.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비유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중요했다. 예수님 주변에 있던 제자들은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 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이 (제자들 처럼) 허락된 사람들이 있으나 허락되니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답하신다. 천국의 비밀이 허락된 자는 천국의 비밀을 더 잘 알게 되지만 천국에 대해 아는게 없는 사람은 천국에 대해 전혀 모르게 된다고 하신다.

이것을 이사야의 말씀의 성취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 백성들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귀도 닫고 눈을 감았다고 하신다. 일부로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고 하신다. 들어서 깨닫고 보아서 알아 예수님께 고침을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하신다. 옛포도주에 길들여져 새포도주 맛보기를 거부한다고 하신다.

그와 반면에, 제자들은 새포도주를 맛보았다. 제자들은 보아서 알고 들어서 깨달을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제자들이 맛보는 포도주는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보아서 알고 들어서 깨닫고자 하였지만 결코 맛보지 못한 새포도주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비유는 쉽다. 어렵지 않다.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예수님의 비유는 해석이 굳이 필요없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이 비유가 얼마나 직유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깨닫기는 쉽지 않다.

농부는 왜 길가와 돌밭과 가시덜기 위에도 씨를 뿌릴까? 정상적인 농부라면 길가와 돌밭과 가시덜기 위에 일부러 씨를 뿌리지 않는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덜기를 개간하여 좋은 밭으로 기경한 후 씨를 뿌를 것이다. 예수님의 설명을 듣기까지 잠시 정지하기로 하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무엇의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예수님을 영접한 자와 영접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아닐까? 결국 임마누엘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의 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성령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의 지체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싹뚝잘린 내용이라…. 낼을 기대하며

마태복음 12:38-50

예수님은 사람이 말한대로, 행한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다. 주님이 심판주이심을 선언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뜨끔했을까? 예수님께 표적으로 보여달라고 요청을 했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면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다.

요나의 표적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의 표적이 아닐까? 새포도주를 담기 위해 옛부대를 찢고 새부대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요나는 사흘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으면서 자기 뜻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요나 얘기를 하시면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암시하셨다. 주님도 땅속에서 사흘동안 계실 것이다. 자기 뜻을 온전히 내려 놓고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요나 때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었다. 지금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큰 자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설교하고 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예수님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하신다. 솔로몬 왕 때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온 사람들도 심판 때에 예수님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참 지혜의 근원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나보다도 솔로몬보다도 크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다. 마귀를 쫒아내기에 급급했지 성령을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마귀를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한 세대는 결국 성령의 지배 대신 마귀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축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축귀의 은총을 받았어도 악한세대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그것도 더 악한 세대가 될 것이다.

예수님이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무리들은 당연히 예수님께 가족이 밖에 와 있다고 알렸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라고 제자들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신다. 예수 신앙공동체는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제자 중에 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여자 제자라고 하여도 없다. 그러나 성도들 간에는 영적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요 아버지가 있다.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는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은 한 가족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으로 형성된 가족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간의 가족관계를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이다.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다. 회개하였으면 천국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믿음은  순종으로 드러난다. 믿음은 열매로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2:31-37

예수님은 귀신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신다고 하셨다.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하신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요 보혜사 성령님을 힘입어 사는 나라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에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신다. 심지어 말로 예수님을 거역하는 자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역하면 결코 용서받을 기회가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고 하나님의 통치는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겠다는 태도다. 추방당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겠다고 하였으면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통치를 받아 성령의 열매을 맺으면 하나님나라의 백성인 줄 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고자 하면서 성령을 거역한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하나님나라 백성이 아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르신다. 그들이 악하다고 하신다. 마음이 악하니 선한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신다. (선한 분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다. 그러니 성령의 도움심이 없이는 선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것에서 선한 것을 낸다고 하신다. 시편 119편에서 시인은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다고 노래한다. 선한 것이란 주님의 말씀이다. 악한 사람이 그 마음에 쌓은 것은 탐욕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한 말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새사람이 되었다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엡4) 바울의 적용을 따라야 한다. 더러운 (악한) 말은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고 바울은 경고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인치신 것을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하기 싫지만) 하나님은 성령의 인치심을 떼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열매없는 가지는 가지치기 당한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둡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에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성령의 열매로 주님의 백성임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