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당을 끌여들였다 실패한 바리새인들은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라도 예수를 해코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침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
사두개인들은 ‘형사취수제’를 언급하며 부활을 꼬집는다. 만일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우라는 모세의 법이 있는데 칠형제 집안에서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상속자 없이 죽어서 그 아내를 동생에게 물려 주었는데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마침내 그 여자까지 죽었다. 사두개인들은 그려면 부활 때에 이 여자는 일곱 명 중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해 오해한다’ 고 대답하셨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하신다. 성경도 모른다고 하신 것을 봐서는 모세오경만 인정하는 사두개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는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대한 무지에 대해 지적하신다. 성경을 바로 알았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알았다면 부활에 대해서도 바로 알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은 만약 부활한다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다시말해 이 땅에서의 삶이 반복된다고밖에 달리 생각 못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사도 바울은 (이땅에서도)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했다. 예수님은 부활의 삶을 천사의 삶이라고 정리하신다. 천사들과 같다는 말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줄로 정히한다면 천사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하에 순종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다.
예수님은 죽은 자의 부활이 모세오경에도 이미 드러난다고 사두개인들에게 답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하셨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살아계셨을 때도 그들의 하나님이셨고 아브라함이 이땅에서 죽은 후에도 그들의 하나님이시다. 다시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몸의 부활은 아직일지 몰라도) 존재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부활특강에 무리는 놀랐다. 사두개인도 놀랐을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이상한(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새하늘과 새땅에서 우리가 황금집에서 사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황금성에 사시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보좌에 앉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묘사지 물질적 실체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계시록에서 요한은 성도들에게 새하늘과 새땅은 물질적이 설명이 아닌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은 곳이라고 천국을 그리고 있다. 처음 것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다 지나간 곳이다. 바울은 한걸음 더 나간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성도들은 이땅에서도 부활의 맛을 보며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임마누엘을 누리라고 하신다.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부활을 맛보며 살 수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