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29-39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번째 (결론적으로) 화가 있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저들이 선지자들을 죽였으면서도 선지자들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우는 이중성에 대해 책망하신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은 선지자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며 모든 책임을 조상들에게 덮어 씌운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의 발뺌이 곧 저들이 선지자들을 죽인 후손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하신다. 연좌제는 아닐 것이고 아마도 조상의 길을 따라갈 것이라는 예언적 선언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조상들의 죄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하지만 결국) 너희 조상의 길을 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조상의 길을 가고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고 하신다. 34절은 좀 애매하다. 예수님이 보낸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이 누구인가? 미래형이 아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보낸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 중에 더러는 순교당하고 더러는 박해를 받는다고 한다. 미래에 닥칠 일처럼 여겨지는데 35절은 이 모든 핏값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돌아간다고 하신 것을 보면 현재형이다. 36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세대에 돌아가리라’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보아 구약 선지자들의 죽음과 (과거와) 앞으로 성도들의 순교까지 모두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함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다. (헬라어 원문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시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면서도 하나님의 통치(보호)를 원치 않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통치(보호)가 없는 집(나라)은 황폐하여 버리질 수 밖에 없다.

구체적인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 가 언제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그때까지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실 때까지 참된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위선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선언하신다. 예루살렘에 거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를 원하지 않는다면 위선자들과 다를게 전혀 없다.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를 원치 않는 것이 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