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는다. 사랑하는데 찾고 찾아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단순히 지금 옆에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성안 거리나 큰 길에서 찾았다는 것은 여자의 행동이 헛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남자는 목자이기 때문이다. 어떤면에서 여자는 남자가 목자보다 성안에서 인정 받는 자였으면 하는 헛된 꿈을 꿨는지도 모를 일이다.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은 당연히 목자인 남자를 (잘) 알 수 없다. 그제서야 여자는 세상은 알아 주지 않으나 자신의 연인 남자를 만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세상은 사랑을 훼손하는 가치들로 가득하다.
프로포즈를 받은 여자는 잠시나마 꿈에 사랑의 이유를 세상적인 것에서 찾았던 것 같다. 이왕이면 키도 크고 잘생기고 대머리도 아니고 좋은 직장에 연봉도 많고… 막상 결혼을 앞두자 남자에 대한 사랑보다 자랑거리를 찾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보게되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남자를 왕으로 인정하게 하게 한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자를 여왕으로 인정하게 할 것이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이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2)]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한 신랑되신 우리 주님의 모습이다. 모습만이 아니다. 멸시받고 버림받고 간고를 많이 겪어 우리의 질고를 아시는 분이시라고 한다. 근본은 하나님의 본체신데 이땅에 흑수저로 나셨다. 사람들이 결코 귀히여기지 않았다. 이런분이 우리 신랑되신다. 신랑되신 예수님께 무엇을 바라는가? 무엇을 찾고 찾고 또 찾는가? 은혜와 평강밖에 무엇을 또 바란단 말인가? 잠시라도 한눈팔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