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저자는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계보를 잇는다고 말했다. 멜기세덱이 누구인가? 1차독자들은 당연히 ‘멜기세덱’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에, 독자들을 생각하고)히브리서 저자는 주춤한다. 멜기세덱에 관하여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멜기세덱’ 이름의 뜻은 ‘의의 왕’이다. 쉽게 생각하면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숨을 고르다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독자들을 책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선생이 되어있어야 할 독자들이 여전히 초보에 머물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로 단단한 음식은 못먹고 (신령한) 젖을 여전히 먹어야 하는자가 된 것을 책망한다. 젖을 먹는 자는 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다. 침대에 누워 베드타임 스토리를 듣는 아이들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 수는 있어도 현실에 적용할 수는 없다.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지각을 사용하고 연단을 받아 현실에서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라는 말만 붙드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권면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고 세례받고 안수받고 부활을 소망하고 심판이 있음을 상상속의 이야기로 가둬놓지 말고 현실 삶에 적용하는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명한다. 우리로 실천하라고 (들은 말씀은 실천하라고) 하나님께서 허락(인정) 하셨다.
말씀의 조명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의 도우심과 깨닫게 하심을 알아 하나님의 선한 말씀의 능력과 새로운 세상, 즉 하나님나라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되어 회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런 자들에게는 ‘성도의 견인’이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자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계보를 잇는 ‘큰’대제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시 제사를 드려달라고 그리스도를 모욕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하늘의 단비를 흡수하여 합당한 채소를 내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늘의 단비를 맞고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으로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속에 있는 더러움으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한다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불살라지게 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내 멋대로 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예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