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독자들을 강하게 책망했던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을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부른다. 그리고 히브리서 독자들이 ‘이보다 더 좋은 것’ 즉 가시와 엉겅퀴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즉 구원의 복을 받는) 합당한 채소를 내고 있음을 확신한다고 안심시킨다. 그리고 불의하지 않고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더 좋은 것, 즉 구원에 합당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성도를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심을 상기시켜준다.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과 함께 열심을 내서 끝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소망을 누리자고 권면한다. 합당한 채소, 즉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 내는 것에 게으르지 않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상속받는 자가되어 후대에의 상속자들에게도 본이되자고 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게으르지 않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상속자가된 아브라함을 예로 든다. 그런데 강조점이 아브라함의 오래 참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다.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보다 더 큰 자가 없어 친히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셨다고 한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시니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소망도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에 근거하기 때문에, 이 소망에 닻을 내리고 살면 하나님과 사귀어 살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소망이 주는 안위다.
휘장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큰 대제사장 성자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계보로 오셨다. 의의 왕의 계보다. 결국 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도 하나님과의 사귐을 나눌 수 있도록 휘장안으로 들어갈수 있게 해 주셨다.
더 좋은 것, 구원에 속한 것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오래 참음으로 소망을 이루어 가야한다.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우리의 연약함이다. 우리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섬기는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오래 참음으로 약속에 따라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성도의 견인’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에 근거하지만 성도의 오래참음을 요구한다. 휘장안으로 들어가신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