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딱 알맞은(합당한) ‘큰’ 대제사장이 있다’ 는 것이 요점이라고 한다. 이 ‘큰’ 대제사장이 지극히 높으신 하늘 보자 우편에 앉으셨다고 한다. 우리 주님이 계신 하늘 보좌 우편이 성소요 참장막이라고 한다. 사람이 세운 성소와 장막은 참 성소와 참 장막이 될 수 없다. 유한하기 때문이다. 하늘 보좌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참 성소와 참 장막에서 우리 구원을 위해 간구 (제사) 드리신다.
땅에 있는 대제사장들은 예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움을 받았다. 이들은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이다. 이미 제사장들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땅에서는 굳이 제사장 직무를 맡으실 이유가 없었다. 땅에서 예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참 성소, 참 장막의 모형과 그림자인 모세의 장막과 성전건물에서 직무를 감당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아름다운 (위대한) 하늘에 있는 참 성소 참 장막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보신다. 율법으로 주신 모형과 그림자보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를 드리시는 ‘큰’ 대제사장의 직무를 맡으신다. 땅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하던 레위 자손들은 무흠할 수 없었다. 그들이 유한하지 않고 무흠하지 않았다면 굳이 ‘큰’ 대제사상 예수님의 직무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불순종의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새언약, 더 좋은 언약을 맺으시길 원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유다가 옛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옛 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을 돌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새언약을 맺으신다. 이번에도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언약의 주도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법을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의 생각에 두시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신다. 이렇게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설정된다. 이렇게 하나님과 백성들은 서로를 안다. (하나님을 알고, ‘큰’ 대제사장 예수를 알면 곧 영생이다.) 이전까지의 불순종을 (불의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첫 계약의 불이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죄값을 묻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아니 첫 계약은 없어졌고 무효라고 하신다.
히브리서 저자는 은연중에 첫 계약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하는 것 같다. 마치 독자들이 첫계약에 집착하는 것처럼. 그러나 한시적으로 갱신을 거듭해야 하는 첫 계약은 없어져야 한다. 대신 더 좋은 새 언약을 지키라고 한다.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더 관심이 많다. 첫번째 계약은 제사보다 젯밥인 축복으로 우리 눈이 돌아가게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하나님도 그런 백성을 돌보시지 않으신다. 그래서 새 언약을 맺으신다. 마음에 하나님의 언약을 새겨주신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젯밥이 아니라 제사(예배)가 보물이라고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과의 사귐, 즉 임마누엘이 복이라고 하신다. 우리로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는 우리에게 딱 알맞은 (합당한) ‘큰’ 대제사상이신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