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 다시말하면 이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죽었다. 이들은 이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받을) 약속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약속을 멀리서 보았다. 심지어 약속에 대한 보증만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이땅에서는 타향살이를 하는 나그네처럼 살았다. 그들은 약속이 이루어질 본향이 따로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들이 생각한 본향은 이땅에 있는 고향이 아니었다. 이땅에 있는 고향이라면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본 본향은 하늘에 있다. 하나님나라다. 하늘에 있는 완전한 성전이 본향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받을 약속이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완전한 사랑이 아닌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성이다.
믿음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다시 소환한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 다시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으로 받은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믿음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드린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받은 약속이었던 이삭을 다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라도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가 (이삭이) 영원함을 믿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순환이다.
이삭도 믿음으로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했다. 이삭이 원하는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축복했다는 의미다. 믿음으로 야곱도 요셉의 각 아들들에게 축복했다. 요셉의 (원)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축복했다. 믿음으로 요셉도 (먼 훗날의) 출애굽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의 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후에 받을 약속을 소망했다. 믿음이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의 정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후에 받을 약속에 대한 소망’이다. 나의 생각과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순종이 곧 ‘믿음으로’다. 히브리서 11장 인물 어느 하나의 믿음도 추상적이지 않다. 그냥 하나님을 믿었다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다. 자신들의 꾀를 따라 사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자신들을 굴복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후에 받을 약속도 이땅에서가 아니라 본향, 하나님나라에서 온전히 받을 것을 소망했다. 받을 약속을 이땅에서 가불해서 살려고 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먼저하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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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 다시말하면 이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죽었다. 이들은 이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받을) 약속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부분적으로만 누렸다. 그러나 온전한 약속을 멀리서 보았다. 심지어 그 약속에 대한 보증만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이땅에서는 타향살이를 하는 나그네처럼 살았다. 그들은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질 본향이 따로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들이 바라본 본향은 하늘에 있다. 하나님나라다. 하늘에 있는 완전한 성전이 본향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받을 약속이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완전한 사랑이 아닌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곳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받을 약속인 영생을 누리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성이다. 다른 약속은 없다. …
(히 11:13-22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