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23-31

이어지는 ‘믿음으로’는 모세로 이어진다. 아니 모세의 부모에게로 이어진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왕(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석달동안 모세를 숨겼다.

부모의 ‘믿음으로’를 이어받은 모세는 장성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했다.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는 무엇일까?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가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서 성육신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의 그림자로 보는 것일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서의 수모를, 즉 (고난의 현장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사귀는 것을, 가난하고 사회적 약자편에 서는 것을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으로 여겼다고 이해하고 싶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모세에게 출애굽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유월절과 홍해를 건넌 사건도 하나님의 뜻이었다. 홍해를 건넌 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다. 믿음 없이 물벽사이로 들어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똑같이 바닷물벽사이로 뛰어든 애굽군대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을 좇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익사했다.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였다’는 의미다. 믿음으로 여리고성도 무너졌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여리고성을 돌았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했기 때문에,  불순종의 여리고성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

오늘도 ‘믿음으로’ 자리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를 넣고 읽어보았다. 크게 무리가 없다. 히브리서의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후에 받을 약속을 소망하여’가 맞다. 오늘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후에 받을 약속을 소망하는 삶이다.

순종 소망 , Obey and Hope

//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마지막 문장이  Wait and Hope 이다. 기다림이 소극적이라면 순종은 적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