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7:1-25

주하나님께서 두로를 위하여 슬픈노래를 지으라고 말씀하신다. 아니 두로를 위한 애가를 친히 지어주신다.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라고 자화자찬하는 두로. 그러나 바다 어귀에 있는 나라요 바닷길 가운데 있으면서 무역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두로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신분도 두로를 지은 자 (주하나님)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두로를 배에 비유하며 배가 얼마나 아름답게 지어졌는지 노래하신다. 스닐의 잣나무로 배의 몸통을,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돛대를, 바산의 상수리나무로 배젓는 노를, 깃딤 섬 황양목과 상아로 갑판을. 애굽의 베로 돛과 깃발을, 엘리사 섬의 청색과 자색 베로 차일을 만들었다. 멋진 범선이 상상된다.

그리고 (인접한) 시돈과 아르왓 주민들을 사공으로 부렸으며 두로의 지혜자들이 선장이되었다. 9절에 그발의 노인들과 지혜자들이 네 가운데에서 배의 틈을 막는 자가 되었음이여 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발의 노인들이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인지, 아니면 두로가 그발의 (바벨론의) 기술도 이미 받아들였다는 것인지 확실지 않다. 바사의 룻과 붓이 두로의 용병이 되었다. 아르왓 사람을 두로를 지키는 병사로 삼았다.

두로는 하드웨어적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온전했다. 두로가 스스로 여러나라와 무역을 하고 사람들의 왕래를 통하여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이 천지를 지으신, 열방을 만드신 주하나님의 역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두로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시스의 은과 철과 주석과 납,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노예와 놋그릇을, 도갈마 족속은 말과 군마와 노새를, 드단 사람은 상아와 박달나무를, 아람은 남보석과 자색 베와 수놓은 것과 가는 베와 산호와 홍보석을, 유다와 이스라엘은 민닛 밀과 과자와 꿀과 기름과 유향을, 다메섹은 헬본 포도주와 흰 양털을, 워단과 야완은 길쌈하는 실과 가공한 쇠와, 계피와 대나무 제품을, 드단은 말을 탈 때 까는 천을, 아라비아와 게달은 어린 양과 숫양과 염소를, 스바와 라아마 상인들은 향재료와 보석과 황금을, 하란과 간네와 에덴과 스바와 앗수르와 길맛의 장사꾼들은 청색 옷과 수놓은 물품과 빛난 옷을 두로에와 가지고 와서 거래를 했다. 두로는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던 다시스의 배들은 두로에 드나들며 두로를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두로는 해양무역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 애가 1절은 두로의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시작해서 두로의 영화가 매우 크다고 맺는다. 주하나님은 아름답고 영화로운 두로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어제부터 길게 말씀하신다. 두로의 영화는 두로 스스로가 아니라 열방을 통하여 주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잊으면 영화는 애가가 될 것이다. 부귀영화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과 같다. 영원한 것은 주하나님이시다. #임마누엘이 영생이다. 주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