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7:26-36

두로에 대한 애가 1절은 두로의 온전한 아름다움과 영화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특별히 두로를 아름다운 무역선으로 지어졌음을 노래한다.

2절은 두로라는 아름다운 무역선이 바다 한가운데서 파선당함을 노래한다. 깊은 바다를 누비며 당당히 무역을 해왔는데 동풍에 침몰 당한 것이다. 무역하던 자들, 사공과 선장, 배의 틈을 막는 자, 상인들, 안전요원들 등등 두로라는 배에 함께 타고 있던 모든 무리는 배와 함께 침몰할 것이라고 하신다.

선장이 침몰을 막으려고 소리질러 봤자 파도소리에 묻힐 것이다. (이곳 저곳에게 도움을 구해봤자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이다. 도움은 주하나님에게서만 온다.) 파선한 배에서 탈출한 사공과 선장은 침몰한 배, 곧 두로를 보면서 통곡할 것이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침몰한 후에 마음아프게 슬피 통곡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두로가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당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라고 애가를 부를 것이다.

두로는 그자체가 재물하나님(신)이었다. 여러나라 여러민족이 두로를 중심으로 무역을 통해 풍족했었다. 그러나 파선해서 깊은 바다속으로 침몰했다. 주하나님 대신 재물을 섬긴 결과다. 무역선의 침몰소식에 백성들도 왕도 놀라고 두려워하며 근심하게 될 것이다. 열방은 두로를 비웃을 것이다. 이웃들이 두로의 침몰을 ‘아하 좋다’할 것이다. 주하나님은 두로는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고 애가를 마무리 하신다.

// 파선과 침몰은 끝이 아니다. 세상 근심에 시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고후7:10 새번역) 두로에 대한 애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진 노래다. 주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로의 패망을 노래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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