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가 이스라엘의 이웃사촌이었기 때문인지 여러장에 걸쳐 심판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주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로 왕에게 전할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 두로 왕의 잘못은 교만이라고 하신다. 두로 왕은 두로를 온전히 아름답고 화려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신격화 했다. 해상무역을 주름잡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주하나님은 명확하게 지적하신다. 두로 왕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하나님처럼 지혜롭다고 생각해도) 사람에 불과하다.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다.
두로 왕은 자신이 지혜롭고 총명해서 두로가 재물을 얻었고 부자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만했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자신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와 같다는 두로 왕의 교만을 지적하신다. 주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두로를 이방 여러나라를 사용하여 치신다. 두로의 아름다움과 영화를 패망시키실 것이다. 해상무역으로 흥한 두로를 배가 깊은 바다에서 침몰함 같이 멸망시키실 것이다. 죽음의 심판을 당하여서야 두로 왕은 자신은 사람이요 신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음. 주하나님께서는 두로가 이방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라 하신다. 두로가 이스라엘의 이웃사촌이었다 해도 여느 이방과 다를바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방에게는 회복의 약속이 없다.) 주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두로뿐만 아니라 두로 왕을 위해서도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두로 왕에 대한 애가도 두로에 대한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시작한다. 두로 왕의 옥새는 해상무역에서 신뢰를 받았다. 한마디로 보증수표였다. 두로왕은 지혜로왔다. 하나님께서 두로를 에덴동산 같이 지켜주시자 두로를 온갖 보석으로 단장하고 (애가가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의 노랫소리가 흘러넘치는 나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다는 표현에서 주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하나님께서 이렇게 두로 왕을세워주시고 지켜주셨다. 주하나님께서 두로를 온전히 아름답게 하셨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국은 두로 왕의 불의로 끝난다. 해상무역으로 부요하게 되자 범죄 (아마도 불공정 거래) 하였다고 한다. 주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두로를 더이상 지켜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신다. 그리고 심판의 불로 멸하신다. 아름다움이 두로 왕을 교만하게 했고 영화로움이 두로 왕의 지혜를 더렵혔다. 결국 두로 왕은 열방의 왕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된다. 두로는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 하다고 하신다. 네 모든 성소를 더렵혔다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두로 왕은 더이상 자신의 양심을따라 무역을 하지 않고 탐욕을 따라 무역을 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 결국은 심판의 불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할 것이다. 영벌이다.
주하나님의 심판은 두로의 이웃 시돈으로 향한다. 시돈을 심판하심으로 주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신다. 심판의 목적이 바로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시는 것이라고 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시돈이 전염병과 전쟁의 칼로 패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로써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시돈으로 하여금 더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로써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신다.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가 삼세번 반복된다.
주 하나님께서는 두로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한고 하셨다. 이스라엘에게 가시 같았던 시돈도 다시는 없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은 다시 모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온 이스라엘과 열방의 심판을 통해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셨듯이 이스라엘 족속을 다시 모아 약속의 땅에 거주하게 하심으로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신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평안이요 사방에서 이스라엘을 멸시하던 모든 자들에게는 심판이라고 말씀하신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주하나님을 알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하나님과 함께 함이 (임마누엘) 평안이요, 임마누엘을 멸시하는 것은 심판(멸망)이다. // 오늘도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할 이유다. 내가 정결해야 할 이유다. 주님은 불의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