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지파에 대한 기업분배가 끝났다. 주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명령한 도피성을 정하라고 말씀하신다.
도피성은 (3절)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그곳으로 피하게 하여,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다. 도피성에 도피하는 자는 도피성 문 어귀에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사건을 보고해야 하고 그 성읍은 그를 받아들여 거주하게 해야 한다. 복수를 하려는 사람이 찾아와도 살인자를 복수하려는 사람에게 내주어서는 안된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살인을 했기 때문이다.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아 실수가 확인되면 도피성에 머물러 살수 있었다. 오직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어야 자기가 속한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도피성으로 요단 서쪽에 세곳과 (납달리 산지 갈릴리 게데스, 에브라임 산지 세겜, 유다 산지 헤브론)과 요단 동쪽에 세곳을 (르우벤 평지 베셀, 갓 지파 길르앗 라못, 므낫세 지파 바산골란) 구별하여 정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되었다고 사관은 분명히 기록한다.
// 도피성은 이스라엘 자손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만큼 모든 생명은 귀한 것이다. 도피성에 피난 온 살인자는 두번 재판을 받는다. 첫번째로 도피성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도피성 성읍의 장로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마 장로들의 판단은 긴박한 가운데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피성으로 피난 온 살인자는 두번째로 회중의 재판도 받아야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합당하지 않은 살인자에게는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이처럼 도피성은 재판을 (심판을) 면제받는 곳이 아니다. 일정기간 생명을 보존하는 곳이다. 음~~. 도피성보다 나은 곳이 있다.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는 바울이 성도들에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고 분명히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자녀)로 사는 것이다.
성도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자들이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성도가 된다. 믿음으로는 법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다. 그리스도 예수라는 도피성에도 ‘믿음의 법’이 있다.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순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