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우벤, 갓, 므나셋 동편 반지파는 요단을 건너 자신들의 소유지로 갔다. 사관은 이들이 가나안 땅 요단 언덕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하는데, 이 요단가가 요단 서편인지 동편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문맥상 요단을 건너자 마자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새번역 공동번역 참조)
요단 동편에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들었다.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실로에 모여 요단 동편의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와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우선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각지파의 대표 한명씩 열명을 길르앗 땅 (요단 동편)으로 보내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하였다. 비느하스를 대표로 한 조사단은 요단 동편 지파에게 “주하나님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주하나님을 따르는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주하나님께 거역하고자 하느냐?”라고 물었다. // 자신들을 이스라엘 온 회중이라고 하지 않고 주하나님(여호와)의 온 회중이라고 말함으로써, 요단 동편의 두지파 반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아닌지 따졌다고 할 수 있다..
비느하스는 특별히 민수기 25장의 브올의 죄악을 언급했다.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주하나님 대신 다른 신에게 제사하여 주하나님을 배역할 때 주하나님께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진노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비느하스는 특별히 요단 동편은 원래 약속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만약 요단 동편이 깨끗하지 않다면 요단 서편에 와서 열지파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지라고 제안했다. 주하나님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아 주하나님께 거역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뜻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뜻도 거역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브올의 죄악고 함께 아간의 범죄도 언급한다. 브올이 음행을 상징한다면, 아간은 불순종을 뜻한다. 불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했다고 한다. 한사람의 잘못으로 당사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아이성 전투에서) 멸망당했음을 예로 든다.
//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지파들은 요단 동편의 지파들도 당연히 이스라엘의 일부로 보았다. 그래서 동편 일부가 주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한 온 이스라엘에 내릴 재앙에 대처하고 했다. 범죄하게 하는 신체의 일부를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았다고나 할까. 사관은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대표가 자신들을 온 이스라엘의 회중이라는 표현 대신 주하나님의 온 회중(16)을 대표한다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혈육공동체가 아닌 주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신정 공동체임을 분명히 하는 것 같다.
비느하스는 브올 사건을 언급함으로 집단적인 음행과 그에 따른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범죄에 대한 경종을, 그리고 아간을 언급함으로 한 개인의 불순종으로도 온 이스라엘이 심판받게 됨을 경고한다. 요단 동편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도 주하나님의 온 회중에 포함되어있음을 분명히 한다.
요단 동편이 깨끗하지 않은 땅이라는 것은 (요단 서편은 깨끗하다는 것은) 편견이겠지만 비느하스를 대표로 한 조사단이 깨끗함을 이유로 요단 동편을 포기하게하고 요단 서편을 공유하겠다는 제안은 굉장히 깨끗한 (구별된, 거룩한) 마음에서 나온 것 같다. 거룩함을 위해서라면 세상 욕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이미 소유한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함을 위해서라면 내것을 이웃들에게 (특별히 믿음의 형제들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서가 끝나간다. 그러고보니 이 중요한 사건에서 여호수아는 등장하지 않는다. 요단 서편은 ‘가나안 정복’을 이끌 장수형 지도자에서 ‘가나안 안식’을 이끌 제사장 체제로 전환되어서 일까? 주어가 여호수아 한명에서 땅분배에서부터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각 지파 대표가 추가되더니 안식을 얻은 후 이번 사건에서부터 여호수아가 빠졌다는 것도 새롭다. 땅의 지도자는 유한하다. 브올 사건의 주인공 비느하스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이기도 하지만 제사장 시대의 도래를 뜻하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에는 주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이스라엘을 이끌 여호수아가 필요했다면, 가나안 안식에는 주하나님의 예배자로서의 이스라엘을 이끌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오늘의 질문은 ‘무엇을 예배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