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느하스를 대표로 하는 요단 서편 조사단의 질문에 르우벤, 갓, 므낫세 동편 반지파가 대답한다.
문)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16)
답1) 거역하는지 아닌지 전능하신 주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대답한다. 그것도 주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도 장차(결국) 이 일이 주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거역하는 범죄함이면 주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지 말라고 간구한다. 답을 조사단에게도 하지만 주하나님께도 고한다.
답2) 제단을 쌓은 것이 주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나, 번제, 소제, 화목제 등 제사를 드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주하나님의 벌을 달게 받겠다. 즉 주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제사의 목적으로 제단을 쌓은 것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답3) 제단을 쌓은 것은 나름 목적이 있고 나름 주의를 기울여 한 행동이라고 항변한다. 목적은 주하나님과의 관계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오히려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후손들이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너희는 주하나님께 받을 분깃(기업)이 없다고 말하여서, 요단 동편 후손들에게 주하나님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염려하여 제단을 세웠다고 말한다. 다시한번 이 제단은 번제나 다른 제사를 위함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답4) 제단은 후손들에게 자신들도 주하나님께 요단 서편과 같은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증거하여 요단 서편의 후손들이 요단 동편의 후손들에게 너희는 주하나님께 받을 분깃이 없다고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반복해서 대답한다.
답5) 마지막으로 제단의 모형을 보라고 한다. 제사가 목적이 아니라 요단 서편과 동편 이스라엘이 한 이스라엘임을 증거하는 모형이 될 뿐이라고 답한다. 다시한번 성막에 있는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아 주하나님을 거역하거나 주하님을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이 결단코 아니라고 최후변론을 한다.
판결) 제사장 비느하스와 요단 서편에서 온 조사단은 요단 동편 지파들의 대답을 듣고 좋게 (옳게) 여겼다. 비느하스는 주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요단 서편과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계신줄 안다고 말하면서 요단 동편 지파들이 주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무죄를 선고한다. 요단 동편의 지파들이 무죄함으로 요단 서편이 주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이유가 없어졌음을 선언한다.
비느하스와 조사단은 요단 동편을 떠나 요단 서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와 요단 동편 자손들이 제단을 쌓은 일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그 결과를 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즐거워 주하나님을 찬송했다. 다시는 요단 동편을 멸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자신들이 세운 그 제단을 ‘엣’ 곧 ‘주하나님께서 하나님(신)이시다’라고 불렀다.
// 비느하스를 대표로 하는 요단 서편의 조사단의 질문은 ‘무슨 제단을 세웠느냐?’가 요점이라면 요단 동편지파들의 대답은 ‘왜 제단을 세웠느냐?’에 촛점을 맞추었다.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해, 다른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단을 세워 주하나님을 거역하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신에게 제사를 지낼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도 주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요단 서편의 후손들에게 증거로 삼기 위해 세웠다고 대답한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소유지로 돌아가면서 (요단 동편에 발을 딛자마자) 첫번째로 한 것이 결국 자신들의 시민권이 요단 서편의 시민권과 동일하다는 것을 제단을 세워 증거한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용병들이 돌아가면서 요단 동편 여권으로 입국한 것이 아니라 요단 서편에서 사용하던 신분증을 여권 대신 사용했다는 것이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세운 큰 제단 모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28절 모형을 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제단이라기 보다 기념비였을 것이다. 10절에 제단 앞에 ‘큰’이라는 (공동번역은 ‘어마어마한’) 수식어가 붙은 것으로 보아 제사를 드리기에 적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단 동편 자손들이 요단 서편을 출입할 때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이라는 증거로 삼았을 것이다.
요단 서편지파들은 요단 동편 지파들이 자신들과 같은 온 이스라엘 인데, 동편의 잘못으로 온 이스라엘이 범죄할까봐 조심하여 조사단을 파견했고, 요단 동편지파들은 요단 서편지파들이 시간이 지나 자신들을 이스라엘 회중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제단을 세웠다. 다시말하면 요단 서편이든 동편이든 하나의 통일 이스라엘을 꿈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관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라는 표현대신 주하나님의 온 회중이라고 고쳤썼는지 모른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공동체에는 즐거움이 넘친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선포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주 다르다는 것으로 상대방을 정죄한다. 틀린 것이 아닌데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선 적대시부터 한다. 대화를 해보면 결국 같은 목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얼마나 편가르기가 심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사회 곳곳에서 총성만 들리지 않는 전쟁 중이 아닌가?
사족: 오히려 기득권자, 강한자가 사회적 약자 소외된 자들의 약점을 채워주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일어나 자기 배만 채워서는 안된다.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도 무식한 자도 지체가 될 수 있다. 아니 이들이야 말로 주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몸의 지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