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11

주안에서 기뻐하라 (빌3:1-11)
끝으로?! (엉 이제 편지의 절반인데…) 단어장을 살펴보니 빌립보서에 두번 나오는 단어다. 여기서 끝으로는 새로운 시작, 곧 ‘계속해서 이후로는’의 뜻이 강하다. (우리는 졸업을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로 바꿔쓸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멈추지 말고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끝으로/라는 단어를 택하지 않았을까?
바울은 계속해서 ‘기쁨’이라는 주제로 편지를 이어간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라고 아무리 반복해서 말해도 지겹지도 힘들지도 않다고 말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라는 말은 빌립보 성도들이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할 오히려 안전한 싸이렌 소리라고 말한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기쁨이라는 것은 능동적인 감정이 아니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기쁨의 이유가 있다. 바울은 이 기쁨의 이유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명히 한다. 이런 우리가 곧 ‘(마음의) 할례파’라고 단언한다. 이것은 ‘육체의 할례파’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바울은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육체적 할례파) 일을 삼가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육체적 할례파중의 할례파였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바울은 육체의 할례는 자신에게 유익할지 몰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는 전혀 유익하지 않다고 시인한다. 그래서 바울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배설물로 여긴다고 편지한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주안에서의 기쁨이라고) 고백한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되고자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의는 (근심하게 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확신있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사귐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확신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은 죽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한다고 소망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을 소망하는 이유는 부활의 몸으로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사귐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 바울은 자신이 육체적 할례파에서 마음의 할례파 바뀌었음을 선언한다. 육체적 할례파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의 할례파야말로 주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마음의 할례파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다.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람이요, 모든 지혜의 근본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와의 사귐이 있다. 주님과의 사귐이 바울이 말하는 기쁨이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염려하고 근심하지 아니한가?) ‘기뻐하라’에 강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주 안에서’가 기쁨의 원천임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오늘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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