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2-21

온전히 이룬 자들은 온전히 이루도록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바울의 소망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는 것이었다(11). 다시말해 자신도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온전한 사귐을 나누길 소망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소망이 있는 이유를 풀어나간다.

바울은 부활의 몸을 이미 얻은 것도 부활의 삶을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을 불러주신, 붙잡아 주신 이유가 영광스러운 몸으로의 부활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사귐)이기 때문에 그것을 목표로 달려간다고 밝힌다.

바울은 형제들에게 아직은 목표를 성취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이룬 일은 잊어버리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말한다. 바울이 향하는 푯대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에 순종하여 받을 상이라고 말한다. 성도가 받을 상이 무엇인가? 영생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삼위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귐이다. 그리스도 예수외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자들은… 바울은 성도들을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온전히 이룬자들은’ 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온전히 이룬 자’라는 말은 바울이 12절에서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라고 한 것으로 보아 ‘온전하기를 바라는’ 자들로 이해해야 좋을 것 같다. 하여간 온전하기를 바라는 자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들에게는 (개인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그 길을 알려주신다고 바울은 설명한다. 그래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때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계속 행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을 형제들에게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자신을 본받는 자들도 눈여겨 보라고 권면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성도들의 삶이 아닐까? 바울은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에 (푯대이신 예수님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달리는 것에) 눈물을 흘리며 마음아파 한다. 그들이 부활의 소망없이 멸망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자들이다. (주안에서의 기쁨이 아닌 자기 기쁨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런 자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도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예수와의 온전한 사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오직 만물의 주재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썩어질 몸을 그리스도와 온전히 사귈 수 있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수 있다.

// 하늘의 시민권자가 가지고 다니는 여권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들이다. 서로 서로를 본받을 믿음의 형제들이다. 주변에 신실한 형제들이 보이지 않을 때라도 우리는 기억할 믿음의 선진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가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늘의 시민권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이다.)  하늘의 시민권은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바라는 부적으로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와의 온전한 사귐을 위해서다. 끊임없는 순종, 곧 믿음의 경주를 마치고 온전한 임마누엘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