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부활의 몸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한 교제를 소망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바울은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요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른다. ‘이와같이 주안에 서라’ 라는 권면이 그러므로 이전인지 앞으로 할 말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주 안에서’를 계속 강조해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의 교제와 연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바울은 성도의 교제와 연합을 위해 구체적으로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실명을 거론하며)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후원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역에 구체적으로 동참해 힘쓰던 여인들도 후원하라고, 글레멘드와 또 다른 자신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부탁한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지체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을 바울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은 마지막 때에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당부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히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교훈한다. 바울은 일상의 염려보다 죽음에 대한 염려를 염두에 두고 이 교훈을 한 것일 것이다. 바울은 3장 10,11절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자신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는 소망을 말했다.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소망하라!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기뻐할 이유다.)
다시한번 바울은 ‘끝으로’라는 접속사로 편지를 이어간다. 어디까지 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달려야 할 믿음의 경주가 남아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은 믿음의 경주를 할 때 덕담을 듣고 칭송을 받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경주를 마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일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라고 교훈한다.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일들을 가르치고 말과 행함으로 보여주었으니 자신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가르친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신다고 가르친다. 임마누엘!
// 믿음의 경주는 임마누엘, 곧 주 안에서의 경주다. 그리고 믿음의 경주 결승점은 온전한 임마누엘이다. 따라서 믿음의 경주는 심지어 바울처럼 감옥에 갇혀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감옥에 갇혀셔도 주안에서의 기쁨과 평강을 가르치고 말과 행함으로 보여주는 바울. 바울은 죽고 부활해서 영광의 몸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온전한 사귐을 소망하면서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다른 지체들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기쁨이여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면서 이땅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임마누엘을 맛보며 연합의 기쁨과 평안을 누린다. 우리에게도 이와같이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은 칠십인 전도자가 돌아와 사역보고를 하며 기뻐할 때, 사역의 열매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다. 참된 기쁨과 평안은 임마누엘에서 온다. ‘주 안에서’에 답이 있다. 이땅에서는 성도들이 주안에서 이와같이 설 때, 연합할 때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