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1:7-13

과유불급! 과녁을 벗어나지 말아라!

  1. 세상에는 미혹하는 자들이 많다. 요한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 편지하는 이유다.
  2. 요한은 성육신을 부인하는 미혹하는 자들의 가르침에 조심해서 진리와 함께 사랑하는 자들의 가르침과 일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 곧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온전한 사귐을 누리라고 당부한다. // 임마누엘이 우리가 받을 온전한 상이다.
  3.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 지나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주님보다 앞선다는 뜻일 것이다. 성령의 인도 (깨닫게 하심)보다 나의 경험과 지혜를 앞세운다는 의미가 아닐까? 장로는 지나친 것을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과유불급이다. 당연히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 임마누엘이 깨어진다. // 지나친 열심보다 삼위하나님과의 교제, 임마누엘이 더 중요하다고 교훈한다.
  4.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과는 교제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성도의 사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사귐이다. 임마누엘의 사귐이다. 임마누엘 밖의 사람들과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은 그 악한 일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져도 기뻐하는 일)에 참여하는 자라고 판단한다. // 만나지 말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성도는 그들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교훈한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이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되냐고 반문한다. 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5. 요한도 바울처럼 성도와의 사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우선은 편지로 교제하지만 대면해서 사귐을 나누고자 소망하며 편지 한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야 말로 주 안에서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일이다.
  6. 장로 요한은 다시한번 ‘택하심’을 강조한다. 이번에는 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가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 자녀들에게 문안한다고 마무리한다. //네 자매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성도의 교제, 곧 사귐은 하나님의 택하심,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땅한 바다.

// 지나침은 과유불급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전통에 사로잡혀 진리를 지나쳤다고 할 수 있다. 급(과녁)에서 벗어낫다. 우로나 좌로 치우쳤다. 그래서 푯대이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다. 택하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우리와 같이 사람 (곧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과녁이(푯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