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를 시작하면서 바울은 빌립소서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빌립보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썼다.
편지를 마치면서, 이번에는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생각해주기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고 적는다. 바울의 쓸 것을 도우려는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을 전달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물질의 후원때문만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바울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비천하거나 풍부하거나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처한 상황이 달라도 주 안에서는 자족하는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바울의 강세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에 있지 않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곧 ‘주 안에서’가 여전히 중심어다. ‘주 안에서’라고 반복하지 않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고 적는 것은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주 안에서도 바울 자신의 능력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 속으면 안된다. 주 안에 있다고 성도는 욕심을 따라 , 혹은 자기 뜻을 따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자가 결코 아니다. 반대로 주 안에서 능력을 주시면 성도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는 불가능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바울의 쓸 것을 도우려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잘했다고 칭찬한다. 이미 빌립보 성도들은 여러번 바울의 사역에 참여했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의 시초에, 바울의 초기 사역부터 바울의 사역에 참여했다고 감사한다.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할 때도 한번이 아니라 두번씩이나 (온전히) 바울의 쓸 것을 보내주었다고 회고하며 감사한다. 바울은 후원 (선물)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빌립보성도들과의 교제(사귐)을 열매맺기를 원한다고 편지한다. 에바브로 디도를 급히 보내면서, 빌립보 성도들이 에바브로 디도편에 바울의 쓸것을 보내 준것으로도 이미 바울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답신한다. 에바브로 디도편에 받은 것은 일차적으로 바울의 쓸 것, 곧 물질의 후원이겠으나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지어져 가는 교제의 풍족함을 이야기 하는듯 하다. 그래서 빌립보의 도움을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라고 적는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의 연합이야 말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다. 마땅한 성도의 삶이다.) 쓸 것을 받은 바울은 성부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빌립보 성도들의 필요를 풍성한 대로 채워주시기를 기원한다. 서로서로 돕는 형제의 교제야 말로 성부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아멘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 한사람 한사람에게 문안 인사를 한다. 바울과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적는다. 구체적으로 가이사의 집 사람들을 언급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로 축원하며 편지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