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1:20-45

레위 지파 그핫 자손들은 에브라임지파 중에서 성읍과 목초지를 배정받았다. 그핫자손들은 도피성으로 지정된 세겜을 포함한 8성읍을 에브라임으로 부터 받았다. 그리고 요단 서편 므낫세 반지파로부터 두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 (20-26)

게르손 자손들은 요단 동편 므낫세 반지파로부터 도피성이 있는 바산 골란과 목초지를 비록하여 잇사갈, 아셀 지파로 부터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고, 납달리 지파중에서도 도피성인 갈릴리 게데스와 목초지를 얻어 총 열세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 (27-33)

므라리 자손들은 스블론 지파와 르우벤 지파, 갓지파로 부터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 갓지파로부터는 도피성 길르앗 라못도 받았다. 므라리 자손은 총 열두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 (34-40)

레위 자손이 이스라엘 기업 중에서 받은 것은 모두 마흔 여덟 성읍과 목초지였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온 자손에 대한 기업분배를 마쳤다. 사관은 땅의 분배를 결말지으면서 주하나님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다고 기록한다. (44) 이스라엘 주위에 대적자들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약속하신 선한 말씀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한다.(45)

// 도피성은 총6곳이다. 모든 도피성에 ‘살인자 도피성’이라는 수식구가 붙어있는데 사관은 왜 르우벤 자손이 준 ‘베셀’에는 안붙었을까? 그저 궁금.

땅분배는 안식으로 이어진다. 이 안식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냥 이 안식을 흥청망청 방탕하게 누리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하신 선한 말씀이 성취되었듯이 가나안 땅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할 때 안식을 누린다는 또 다른 약속이다. 이스라엘 주위에 대적자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표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는 바울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이지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없는 안식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 할 때가 남아있고, 순종해야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배웠다. 바울은 ‘참’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한다. 순종하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믿는 도리, 곧 대제사장 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예수를 굳게 붙잡는 방법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다. 안식이다.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삶이다.

여호수아 21:1-19

땅배정이 끝났지만 레위 자손을 위한 거처와 목초지 배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위 자손들이 땅분배 제비뽑기를 진행한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주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자신들이 거주할 성읍과 목초지를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들의 기업에서 레위 자손을 위한 성읍과 목초지를 주었다.

레위 자손들이 받은 거주지와 목초지도 제비뽑기로 그 가족대로 배정되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유다, 시므온, 베냐민 지파 중에서 열세 성읍을, 그핫자손 중 제사장이 아닌 자손들은 에브라임, 단, 므낫세 반지파 중에서 열 성읍을 받았다. 게르손 자손들은 잇사갈, 아셀, 납달리, 요단동쪽 므낫세 반지파 중에서 열세 성읍을 받았다. 므라리 자손들은 르우벤, 갓, 스블론 지파중에서 열두 성읍을 받았다. (1-7)

이어서 사관은 세부 가문별로 제비뽑아 배정받은 거주할 성읍과 목초지를 열거한다. 먼저 아론 자손들이다. 아론 자손이 배정 받은 목초지는 헤브론이었다. 헤브론의 밭과 그 촌락들은 갈렙의 소유고 헤브론과 그 주위의 목초지는 아론 자손에게 주어졌다고  밝힘으로써 제사장들에게는 땅이 분배 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제사장 아론 자손은 유다/시므온/베냐민으로 부터 열세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받았다. (8-19)

// 레위 자손이 받은 성읍들과 목초지. 다른 지파들이 기업으로 받은 성읍들과 밭과 어떻게 달랐을까? 레위 자손이 배정 받은 성읍들과 목초지는 주인은 주하나님이시고 레위 자손은 무상영구 임대자로 보면 될까? 레위 자손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성읍과 목초지에 대한 재산권이 없었다. 당연 매매권이 없었을 것이다. 다른 지파 자손들이 자신의 땅과 소유를 지키기 위해 수고해야 했다면 레위 자손들은 그저 거주하면서 잘가꾸면 되었다. 레위 자손은 다른 지파 자손들의 땅에 섞여 거주지와 목초지를 분배받았다. 흩어진 레위 자손은 단체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변의 다른 지파 자손과 상부상조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나라의 전형이다.

하나님나라는 성도가 소유하는 땅이 아니다. 성도의 재산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임대자다. 언약에 따라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곳이다. 하나님나라는 지켜야 할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지키시는 분은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성도가 이웃과 함께 누리고 서로 나눠야 할 은혜다.

 

여호수아 20 (1-9)

열두지파에 대한 기업분배가 끝났다. 주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명령한 도피성을 정하라고 말씀하신다.

도피성은 (3절)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그곳으로 피하게 하여,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다. 도피성에 도피하는 자는 도피성 문 어귀에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사건을 보고해야 하고 그 성읍은 그를 받아들여 거주하게 해야 한다. 복수를 하려는 사람이 찾아와도 살인자를 복수하려는 사람에게 내주어서는 안된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살인을 했기 때문이다.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아 실수가 확인되면 도피성에 머물러 살수 있었다. 오직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어야 자기가 속한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도피성으로 요단 서쪽에 세곳과 (납달리 산지 갈릴리 게데스, 에브라임 산지 세겜, 유다 산지 헤브론)과 요단 동쪽에 세곳을 (르우벤 평지 베셀, 갓 지파 길르앗 라못, 므낫세 지파 바산골란) 구별하여 정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되었다고 사관은 분명히 기록한다.

// 도피성은 이스라엘 자손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만큼 모든 생명은 귀한 것이다. 도피성에 피난 온 살인자는 두번 재판을 받는다. 첫번째로 도피성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도피성 성읍의 장로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마 장로들의 판단은 긴박한 가운데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피성으로 피난 온 살인자는 두번째로 회중의 재판도 받아야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합당하지 않은 살인자에게는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이처럼 도피성은 재판을 (심판을) 면제받는 곳이 아니다. 일정기간 생명을 보존하는 곳이다. 음~~. 도피성보다 나은 곳이 있다.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는 바울이 성도들에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고 분명히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자녀)로 사는 것이다.

성도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자들이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성도가 된다. 믿음으로는 법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다. 그리스도 예수라는 도피성에도 ‘믿음의 법’이 있다.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순종해야 한다.

여호수아 19:24-51

다섯째로 아셀지파가 그 가족대로 제비뽑아 땅을 분배 받았다. (24-31)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이 그 가족대로 제비뽑아 땅을 분배 받았다. (32-39) 마지막 일곱째로 단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뽑아 기업을 받았다.(40-48) 사관은 단 자손이 레셈과 싸워 점령해서 기업, 곧 땅의 경계를 확장했다고 토를 단다. // 단 자손의 경계가 확장 되었다는 구절을 (47절) 통해 기업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두지파 사이에서 매매하거나 빼앗는 것은 안되지만 차지하지 못한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쳤다. 그런데 사관은 이스라엘 자손이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따로 기업을 주었다고 추가한다. 여호수아 역시 주하나님의 명령(약속)대로 에브라함 산지 딤낫 세라를 요구했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 땅을 여호수아에게 주었다. 여호수아는 딤낫 세라에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했다.

14장 길갈에서부터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땅을 분배하기 시작하여 19장에서 드디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주하나님 앞에서 땅을 나누는 일을 마쳤다.

// 눈의 아들 여호수아도 갈렙처럼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요구해서 차지한다. 헤브론 산지처럼 험했는지 그곳 사람들이 아낙자손처럼 컸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100세 인생을 살아가는 여호수아 역시 (살기힘든?) 산지를 배정받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땅을 분배한 여호수아가 스스로 자기 몫의 땅을 분배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에게 기업으로 주었다는 기록이 인상적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욕심을 챙겨서는 안된다. 딤낫 세라. 구체적인 지명이 있고 여호수아가 성읍을 건설하고 살았다고 기록하지만 분명 큰 땅이 아니었을 것이다.

땅 배정이 갈렙에서 시작하여 여호수아에게서 끝났다는 것도 흥미롭다. 사관은 제비뽑기가 아닌 약속으로 기업을 얻은 이야기로 기업분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하나님나라가 그렇다. 모든 것이 예정되어있지만 (예정? 뭔지 모르고 적은 단어)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내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나라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상’이라는 것이 바로 임마누엘이다. 영생이다. 성도의 기업이다.

여호수아 19:1-23

남은 일곱지파 중 두번째로 시므온 자손이 가족대로 제비를 뽑아 기업을 받았다. 시므온은 유다자손의 기업 중에서 (아마도 유다자손이 아직까지 점령하지 못한 지역이 아닐까?) 분배받았다. 사관은 시므온 자손이 유다 자손의 기업중에서 분배받은 이유를 유다 자손의 분깃이 유다 자손들에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세번째로 스블론 자손이 가족대로 제비를 뽑아 기업을 분배 받았다. 네번째로는 잇사갈 자손이 분배받았다. (많은 지역가운데 유독 ‘수넴’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주하나님의 순서을 기다려야 하지만 약속에 따라 한지파 한지파 기업을 받는다.

// 기업은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공유되고 나누는 것은 허락되었나보다.  아니 공유하고 나눠야 한다. 사관은 시므온이 유다 자손들에게 분배된 땅을 받은 이유가 유다 자손들의 분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갈렙처럼 제비뽑은 기업 외에 약속에 따라 적극적으로 점령해서 분배받은 땅이 추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진 시므온 자손들은 유다 자손의 도움아래 땅을 분배받았으나, 역시 최종적으로 점령하는 것은 저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랑역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곧  구원의 은혜는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공유되고 나누는 것은 허락되었다. 아니 (넘치게 받은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나눠야 한다. 전도와 선교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서. 구원의 은혜는 공유되고 나누어지지만, 받은 사람이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열매 맺는다. 하늘의 시민권을 누리는 것은 시민권 유무가 아니라 시민권을 행사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결정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지 않는다면 ‘성도’ 혹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슨 의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