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0:5-19 읽기

주하나님께서는 앗수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진노의 막대기와 분노의 몽둥이로 사용하신다. 주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앗수르, 그런 앗수르 사람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앗수르 사람을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하며, 주님을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와 노략하게 하시고 짓밟게 하신다. 그런데 앗수르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을 파괴하며 멸절하는데 골몰했다. 주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아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다.

앗수르는 자기가 왕중의 왕이라며 교만했다. 갈로 갈그미스 하맛 아르밧 사마리아 다메섹 모두 굴복시켰다고 자랑한다. 우상들을 섬기는 많은 나라들을 굴복시켰다고 자랑한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의 신상도 우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하나님께 대한 교만이다. 당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도 우상으로 가득했음을 지적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주께서는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행하시기 위해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 후에 주께서는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 곧 교만과 오만을 벌하실 것이다. 앗수르는 자신의 힘과 지혜로 다른 나라들을 굴복시켜 영토를 확장하고 재물을 약탈했다고 자신의 총명을 자랑했다. 스스로 용사라고, 온 세계를 얻었다고 떠벌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앗수르는 도끼요 톱이라고 하신다. 주께서 사용하시는 심판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어찌 도끼와 톱이 사용자에게 스스로를 자랑하고 큰 체 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회초리가 회초리를 든자를 몽둥이가 몽둥이를 든 자를 움직이려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하신다. 따라서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살진 앗수르를 파리하게, 앗수르의 영화를 불사를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불과 불꽃이 되셔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앗수를 하루아침에 소멸시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앗수르의 영광이 전부 소멸될 것이라고 하신다.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지는 것 같이 울창한 숲과 같았던 앗수르에 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몇그루의 나무만 겨우 남을 것이라고 하신다.

>> 매일의 삶에서 경건을 훈련하지 않으면 마음이 완악해지고 눈이 높아져 교만하고 오만해 진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떠벌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앗수르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동방의 예루살렘을 운운하는, 촛대가 한반도로 옮겨졌다고 교만한 한국교회도 앗수르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신다. 하루아침에 소멸되지 않을 지 몰라도 병자처럼 점점 쇠약해 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돌이킬 시간이 있다. 경건의 근육이 다 빠지기 전에 다시  재활운동을 해야 한다. 겸손하게 경건의 훈련을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의 생각을 알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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