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1:1-16 읽기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그런데 어떻게 남은 자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할 수 있을까? (주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메시야를 통해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주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분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아니시면 누구란 말인가? 육신으로 오셨지만 주하나님의 영, 곧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주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으로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께서는 주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신 분이시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외모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정직으로 가난한 자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부요하고 교만한 악인에게 사형을 내리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철두철미하게 공의와 성실로 행하신다.

공의와 성실이 행해지는 나라 곧 하나님나라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들과 뛰노는 나라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나라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해도 괜찮은 나라며, 젖 뗀 어린 아니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해가 없는 나라다. 주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나라이기 때문에 해됨도 상함도 없는 나라다.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싹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하신다. 열방이 예수께 돌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거한 곳이 영화로운 하나님나라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들을 열방의 강대국의 손에서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주하나님께서 예수를 푯대로 세우시고 열방을 향하여 예수를 따르라고 하신다. 에브라임이 더 이상 유다를 질투하지 않게 되고, 유다를 괴롭히던 열강은 끊어지고 유다도 더 이상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다. 화목하게 된 에브라임과 유다는 주변나라들을  복종시킬 것이다. 주하나님은 열강들을 흔들어 버리시고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들이 시온의 대로를 걸을 수 있게 인도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던 날과 같게 하실 것이다.

>> 하나님나라. 화목된 나라. 바울은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곧 더 먹으려고 더 마시려고 서로 싸우는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으로 중만하신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라고 적용한다. 해됨도 상함도 없는 나라. 성도들이 꿈꿔야 할 공의와 성실이 행히지는 나라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시는 분이신데 하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성도들이랴.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사야 10:20-34 읽기

그날에 (주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앗수르가 소멸되는 날일까?)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피난갔던 자들이 더이상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할 것이라고 하신다. 남은 자 야곱(이스라엘)의 남은자가 전능하신 하나님게로 돌아 올 것이라고 하신다.

이사야는 남은 자만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넘치는? 공의로 파멸될 것이라고 밝힌다.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작정된 파멸을 세상 끝까지 행하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시온에 거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앗수르가 애굽처럼 때리고 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시온에 거주하는’은 거주지역이라기 보다는 ‘말씀에 순종하는’의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백성들은 주하나님의  진노로 멸절당하겠지만 남은 자들에 대한 분을 그치신다고 하신다. 대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앗수르를 오렙바위의 미디안 족속과 홍해에 수장된 애굽 마찬가지로 멸절시킬 것이라고 하신다. 더이상 앗수르의 압제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풍요를 자랑하던 앗수르의 멍에가 제풀에 부러질 것이라고 하신다.

앗수르의 위세는 아얏, 미그론, 믹마스, 게바, 라마, 기브아, 갈림, 라이사, 아나돗, 맛메나, 게빔, 놉을 휩쓸고 시온산 곧 예루살렘을 치겠지만,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앗수르를 꺾으실 것이다. 앗수르의 교만을 낮추실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앗수르라는 숲의 나무들을 베실 것이라고 하신다.

>> 거룩하신 주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 온다.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은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앗수르도 결국은 자기 교만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를 치는 자에게 의지하고 굴복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께 진실되게 의지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 굴복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 피난하라고 하신다.

이사야 10:5-19 읽기

주하나님께서는 앗수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진노의 막대기와 분노의 몽둥이로 사용하신다. 주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앗수르, 그런 앗수르 사람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앗수르 사람을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하며, 주님을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와 노략하게 하시고 짓밟게 하신다. 그런데 앗수르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을 파괴하며 멸절하는데 골몰했다. 주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아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다.

앗수르는 자기가 왕중의 왕이라며 교만했다. 갈로 갈그미스 하맛 아르밧 사마리아 다메섹 모두 굴복시켰다고 자랑한다. 우상들을 섬기는 많은 나라들을 굴복시켰다고 자랑한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의 신상도 우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하나님께 대한 교만이다. 당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도 우상으로 가득했음을 지적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주께서는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행하시기 위해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 후에 주께서는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 곧 교만과 오만을 벌하실 것이다. 앗수르는 자신의 힘과 지혜로 다른 나라들을 굴복시켜 영토를 확장하고 재물을 약탈했다고 자신의 총명을 자랑했다. 스스로 용사라고, 온 세계를 얻었다고 떠벌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앗수르는 도끼요 톱이라고 하신다. 주께서 사용하시는 심판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어찌 도끼와 톱이 사용자에게 스스로를 자랑하고 큰 체 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회초리가 회초리를 든자를 몽둥이가 몽둥이를 든 자를 움직이려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하신다. 따라서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살진 앗수르를 파리하게, 앗수르의 영화를 불사를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불과 불꽃이 되셔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앗수를 하루아침에 소멸시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앗수르의 영광이 전부 소멸될 것이라고 하신다.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지는 것 같이 울창한 숲과 같았던 앗수르에 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몇그루의 나무만 겨우 남을 것이라고 하신다.

>> 매일의 삶에서 경건을 훈련하지 않으면 마음이 완악해지고 눈이 높아져 교만하고 오만해 진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떠벌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앗수르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동방의 예루살렘을 운운하는, 촛대가 한반도로 옮겨졌다고 교만한 한국교회도 앗수르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신다. 하루아침에 소멸되지 않을 지 몰라도 병자처럼 점점 쇠약해 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돌이킬 시간이 있다. 경건의 근육이 다 빠지기 전에 다시  재활운동을 해야 한다. 겸손하게 경건의 훈련을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의 생각을 알라고 하신다.

이사야 9:8-10:4 읽기

하나님의 열심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하나님나라다. 그런데 주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주께서 야곱에게,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북이스라엘 백성의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을 지적하신다.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만의 대안을 갖고 있다고 교만했다. 주하나님께서는 르신(아람)을 일으켜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의 북이스라엘을 치신다. 아람뿐만 아니라 블레셋으로도 이스라엘을 격동시키고 삼키게 하신다. 이스라엘을 향한 주하나님의 진노의 손을 돌이키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주하나님께 돌아오거나 주하나님을 찾지 않는다고 책망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장로/지도자들과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이끈다고 책망하신다. 모든 백성이 경건하지 않고 악을 행하며, 망령되이 말하기 때문에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그들은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주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손을 내려놓지 않으신다.

악행에 대해 주하나님께서는 불로 심판하신다. 주하나님의 진노로 땅을 불탈 것이요 백성은 섶과 같이 타서 재도 남지 않을 것이다. 형제들끼리도 사랑하지 않으며 굶주림에 자기 혈육을 먹기까지 할 것이라고 하신다. 북이스라엘의 장자지파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서로 먹을 것이며,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동맹하여 유다를 칠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진노의 손을 돌이키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런데도 불의한 법, 불의한 말로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한다고 책망하신다. 이런 (지도)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지적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가난한 ‘내’백성이라고 부르시는데…) 이런 지도자들에게 심판의 날에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신다. 심판을 어떻게 피하며,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겠으며, 지도자로서의 기득원을 어떻게 지키겠느냐고 물으신다. 포로로 잡혀가는 것보다도 육신의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도 못한 처지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곧 마지막 심판을 면할 수 없다고 하신다. 그럴지라도 주하나님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교만하고 완악한 백성, 주하나님을 찾지 않는 백성, 악행을 하는 백성을 향해 주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손을 돌이키시지 않으시는데 하물며 가난한 자, 과부, 고아들을 약탈하는 백성들을 향한 주하나님의 진노를 어찌 돌이키랴.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방법은 경건 밖에 없다.

이사야 9:1-7 읽기

율법과 증거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의 결국은 흑암, 더 심한 흑암이다. 그러나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아는)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다. 주하나님께서는 멸시 당하던 땅을 영화롭게 하신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에게도 큰 빛이,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도 빛이 비친다. (요한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요한복음을 시작한다.) 주께서 이 생명을 누리는 하나님나라를 창성하게 하신다. 주 앞에서 추수하는 즐거움의 나라가 되게 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명에와 채찍과 막대기로 압제 받는 자들에게 안식을 주신다. 더이상 군화를 신고 군복을 입고 싸움터에서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신다. 군화와 군복을 불살라버리실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오직 하나님의 열심만이 가능하게 한다. 이사야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어깨에 정사를 메신 그 분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다. 이름 그대로 그분의 통치는 평강에 평강을 더하는 태평성대가 무궁히 이어지는 다스림이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왕좌와 다윗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다스리신다.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나라요 영원한 나라다. 하나님나라다.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 가시는 나라다.

>> 성도는 하나님의 열심이 한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시작되었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진행되었고 성도들이 예수의 신부된 거룩한 성으로 완성되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 믿음은 성도로 하여금 이땅에서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며 살게한다.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믿음의 길의 끝은 흑암이 아니라 생명의 빛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라고 하신다. 나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순종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