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8:9-22 읽기

열방은 끝내 패망하리라. 하나님과 세상나라들의 싸움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 세상나라들이 동맹을 맺어도 끝내 이루지 못한다. 아니 시행조차 되지 않는다.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 임마누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하나님의 백성들도 세상의 길을 따른다. 주께서 이사야에게 백성의 길로 가지 말라고 깨우쳐 주신다.

백성들이 편가르기 하는 것을 따르지 말라고 하신다.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주하나님만 구별하여 섬기라고 하신다. 세상 길을 따르는 유다와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성소)가 걸림돌이 된다고 하신다. 예루살렘 주민들에게는 함정이요 덫이라고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주하나님의 말씀에 걸려 넘어지고 쓰러지며 부러질 것이라고 하신다. 함정에 빠져 잡힐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제자들에게 잘 간직하라고 하신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불순종의 이스라엘에게 얼굴을 돌리셨지만 이사야는 주하나님을 기다리며 주하나님을 바라본다고 다짐한다.

이사야는 자신에게 주신 자녀들이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주신 징표와 예표가 되었다고 말한다. 시온 산에 계신 주하나님. 시온 산은 주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이 모인 곳이다. (영적으로 죽은)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구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아침 빛을 보지 못한다고, 확실한 소망이 없다고 한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결국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리가 될 것이며, 굶주림으로 왕과 하나님을 저주하는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는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요 그들은 심한 흑암으로 쫓겨들어갈 뿐이다.

>> 세상은 끝내 패망한다. 임마누엘, 곧 하나님 편에 서지 않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을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그래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아침 빛을 본다.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본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걸림돌로 여기며, 대신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 묻는, 곧 점집을 찾아가는 자들에게는 환난은 흑암을 흑암은 더 심한 흑암을 이룬다. 이사야의 다짐을 따라 구해본다.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이사야 8:1-8 읽기

“마헬살랄하스바스” 주하나님께서 이사야의 아들 이름을 지어주셨다. 전리품과 신속함의 합성어다. 이사야가 아들을 낳았다. 주하나님은 이사야의 아들이 아빠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앗수르가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점령할 것을 말씀하신다.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남유다 백성들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암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를 기뻐한다고 지적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앗수르로 하여금 르신과 베가를 (곧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큰 강물로 뒤덮어 버리고 남유다까지 흘러 들어오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유다마져도 익사직전의 상황까지 가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임마누엘이 펴는 날개가 유다 땅에 가득할 것이라고 하신다. 임마누엘이라는 아이의 날개가 넓은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이라는 아이와 함께 하시는 주하나님의 날개가 무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임마누엘아! 하나님의 날개아래 거하라고 하신다. 세상의 빠른 흐름은 마지막을 재촉할 뿐이다. 뒤처지는 것 같아도 천천히 흐르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세상조류에 휩쓸려 익사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다.

이사야 7:10-25 읽기

주하나님께서 아하스 왕에게 말씀하신다. 아하스 왕에게 주하나님께 무엇이든 한 징조를 구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아하스의 반응은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답을 한다. 아하스는 주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핑계를 댄다. 주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뜻을) 구하지 않는 아하스 왕에게 호통치신다. 백성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지 않으면서, 주하나님마져도 괴롭히려 하느냐라고 야단치신다. 주하나님께서 아하스에게 오히려 한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동정녀에서 난 임마누엘이라는 사람이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치즈와 꿀을 먹게 될 것이나, 이 아이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두 왕(르신과 베가?)의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에브라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공격당했듯이 유다도 앗수르로부터 침략당하는 불행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도움을 청했던) 애굽 군대가 나일강을 건너 파리떼처럼, (동맹을 맺었던) 앗수르 군대가 벌떼처럼 침공할 것이라고 하신다.  주께서 유다로 하여금 그날에 앗수르 왕에게 상투가 짤리고 수염도 깎기는 치욕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래도

남은 자가 있다. 그러나 암소 한마리, 양 두마리로도 충분한 치즈와 꿀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남은 자는 극히 적다고 하신다. 옥토였던 포도원을 가꿀 농부가 부족할 정도로 남은 자가 적어서 포도원은 잡초로 무성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잡풀이 무성한 포도원은 더이상 과수원이 아니라 사냥터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기경할 수 없을정도로 찔레와 가시로 덮혀 소와 양들만 밟는 곳이 될 것이다.

>> 성도라면 주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해야 한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빛의 자녀로 행하기 위해서다. 아하스 왕은 이 기회를 걷어찼다. 결국 주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원치 않는 아하스 왕에게 ‘임마누엘’만이 살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임마누엘’만이 생명임을 깨닫기 전에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것에 의해 패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임마누엘 만이 영생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다면 패망이다.

이사야 7:1-9 읽기

유다 왕 웃시야의 손자 요담의 아들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예루살렘을 쳤으나 이길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람이 에브라임과 (북이스라엘과) 동맹하였다는 소식에 다윗의 집 (남유다) 왕과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 때에 주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아하스를 만나 주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주하나님은 아하스에게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로 말미암아 안절부절하지 말고 삼가 조용하라고 하신다.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은 연기나는 두개의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고 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동맹해서 유다를 쳐서 쓰러뜨리고 다브엘의 아들로 왕을 삼고자 하나 주하나님께서 그들의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오히려 에브라임이 동맹을 맺었던 아람과 르신으로 말미암아 육십오년 내에 패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에브라임은 이미 르말리야의 아들이라고 하신다. 르말리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신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아마도 아하스왕에게 결론적으로 하시는 말씀인 듯. 곧 남유다가 주하나님을 굳게 붙잡지 아니하면 남유다도 굳게 서지 못하고 북이스라엘처럼 패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창조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유다는 침공을 받았으나 능히 막아낼 수 있었다. 이사야를 아버지로 둔 스알야숩은 아버지와 함께 감히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이사야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와 아들 스알야숩(남은자가 돌아온다)은 이름이 곧 복음이다. 우리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가 왕이며, 누가 아버지며, 누가 머리인가?  우리가 굳게 붙잡아야 (믿어야) 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심이 분명해 진다.

이사야 6:1-13 읽기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환상을 본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다. 주의 옷자락은 성적에 가득했다. 천사들이 주를 모시고 서 있었다. 천사들은 여섯날개가 있었다.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 날고 있었다. 천사들은 찬양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땅에 충만하도다’ 천사들의 화답하는 노래소리에 성전에는 연기, 곧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했다.

주하나님의 임재를 친히 목도한 이사야는 자신에게 화가 임하였다고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사야는 주하나님의 이름을 경홀히 부르는 선지자요, 주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백성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 천사중의 하나가 제단에서 불이 핀 숯을 가지고 이사야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이사야 입술에 대었다. 천사는 제단 숫불로 이사야의 악이 제하여졌고 이사야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한다.

용서를 받은 이사야는 주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가 누구를 보내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한다. 주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너희가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라고 백성들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신다.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백성의 귀를 막으며 백성의 눈을 감기게 하라고 명하신다. 이는 백성들이 불순종할 것에 대한 신탁의 말씀이다. 불순종한 백성이 눈으로 보고 귀를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신다고 하신다.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주께 어느 때까지 이런 말씀을 신탁해야 하는지 묻는다. 주께서는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이 땅이 황폐하게 될 때까지라고 말씀하신다. 십분의 일이 남아도 더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주는 인자하시다.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를 베어버리셔도 그 그루터기는 남겨두신다. 거룩한 씨가 그 땅을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 이사야가 받은 소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라는 반어법 메세지가 복음이 될 수 없다. 이런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사야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감당해야 한다. 이사야는 어느 때까지 ‘숨겨진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묻는다. 주께서는 십분의 일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루터기만 남을 때까지라고 답하신다. 그래야 거룩한 씨가 (예수께서) 그 땅을 회복시키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는 복음을 전파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숨겨진 복음’이 ‘복음’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여전히 들어도 보아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깨닫고 알았으면서도 돌아와 고침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무슨 대단한 전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루터기만 남더라도 시온의 딸이요 예루살렘 거주민이 되어야 한다. 고침을 받으라고 하신다. 율법과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