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바울은 보이지 않는 것,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있는 집이 무너지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은신 집이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하늘로부터 오는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 이 장막집에서 (세상에서) 탄식하고 있다고 한다. (탄식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바울은 장막집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장막집에서 무거운 짐에 눌려 탄식하고 있다고 다시한번 말한다. 그렇다고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하늘로부터 오는 집을 장막집 위에 덧입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죽을 육체가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죽을 육체가 장막집이요 생명이 하늘로부터 오는 집, 거룩한 성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것을 알려주시고 이루어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요, 이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한다.
6-10 성령 안에서 확신에 찬 바울은 (성도라면)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한다. 비록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지만,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한다. 보는 것으로 (곧 믿음없이) 살아가지 않기에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한다. 물론 바울은 몸을 떠나서 (육체의 몸을 벗어버리고)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 바울은 따라서 육신에 머물러 있든지 육신을 벗어 버리든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적용하는 것이다. 성도들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 시쳇말로 ‘존버’하는 바울. 바울이 존버하는 근거를 소망이요 믿음이라고 말한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장막위에 하늘로부터 오는 장막을 덧입기를 원한다. 곧 (환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기를 원한다. 성도라 해도 이땅에서는 주님에게서 떠나 사는 존재들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보좌 우편에 계신다.) 그렇다고 죽어버린다고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죽든지 살든지) 주님과 함께 사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선한 일을 하며 사느냐, 자신을 기쁘게 하는 악한일을 하며 사느냐의 문제라고 단정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은 자신이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기 때문이다. 심판의 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믿음으로 순종하라고 하신다. 육신을 입고 살지만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로 옷입고 살라고 하신다. 믿음의 삶이 곧 임마누엘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