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주께 책망을 받는다. 그것도 뿔이 단단히 나신 주께 징계를 받는다. 화살에 찔린 고통과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압박을 받는다. 시인은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몸에 성한 곳이 없다고,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뼈마디까지 아프다고 고통의 노래를 부른다. (주의 진노가 자신의 죄로 말미암음을 알고 노래한다.)
시인은 자신의 죄악을 지적받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몸의 상처는 썩어 악취가 난다. 시인은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시인한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슬픔에 빠진다. 허리도 쑤시고 피부도 성한 곳이 없다. 몸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불안으로 신음한다.
시인은 주를 찾는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습니다. 나의 탄식을 주께서 아십니다. 시인은 자신의 심박도 약해지고 동공도 풀리기 시작한다고 주께 아뢴다. 사랑하는 자와 (가족과) 친구와 친척들도 시인에게 등을 돌린다. 원수들은 이때가 기회라고 시인을 해치기 위해 올무를 놓고 음모를 꾸민다. 시인은 이 모든 상황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이 초래되었으니 핑계댈 말이 없다고 인정한다.
시인이 바랄 것은 오직 주님뿐이다. 시인은 주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시인은 자신의 잘못으로 벌받는 것을 원수들이 기뻐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만약 잘못을 하고도 자신은 징계를 받지 않는다며 교만했을지도 모를 자신을 경계한다. 시인은 자신이 넘어지게 되었다고 근심가운데 있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다시금 주께 죄악을 시인하고 죄를 뉘우친다 (슬퍼한다). 시인의 원수들이 죄악을 인정한 시인을 강하게 몰아부친다. 시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을 따라) 죄악을 시인한 것을 물고 늘어진다.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시인이 죄를 인정했으니 시인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외쳐댄다.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못 박으소서 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시인은 주님의 자비를 구한다.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벌을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 아니다. 벌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다.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고린도 성도를 변화시킨 모습을 나열한다 (고후 7:11). 열성, 진리에 대한 변호, 죄악에 대한 의로운 분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주를 그리워하는 마음, 열정, 응징 . 우리도 주께서 성도의 구원이심을 알아야 한다. 시인의 노래처럼.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가르침이다. 벌을 받아도 뉘우치면 주께서는 자비를 베풀어주신다. 버리지 않으신다. 멀리하지 않으신다. 주께서 나의 구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