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1편 읽기


시인은 주께 피한다고 기도한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주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 시인은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속히 구원해 달라고, 자신이 피할 수 있는 바위요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달라고 / 시인은 주님을 피할 바위요, 구원의 요새라고 다시한번 고백하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시인을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주님께 피하는 것조차도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셔야 가능하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썩어 없어질 우상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렸지만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생각하며 기쁘고 즐거워 한다. 시인은 자신의 고난을 돌아보시고 원수의 손에서 자신을 건져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노래한다.

그런데 시인은 다시 또 고통을 받고 있다고 노래한다. 울다 지쳐 시력조차 잃을 지경이고 몸도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다고 노래한다.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고, 삶이 탄식속에 흘러간다고 노래한다. 근력이 고통속에서 말라버렸고 뼈마저 녹아버렸다고… 이렇게 늙어간다고 탄식한다.늙어가는 것은 둘째치고 사람들이 시인을 비난한다. 이웃사람들은 혐오한다. 아니 친구들마저도 시인을 외면하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시인을 피한다. 마치 시인이 죽은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기억에서조차 잊혀진 존재처럼, 깨진 그릇 같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시인을 비난하고 협박하고 시인을 죽이겠다고 함께 모여 음모를 꾸민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시인은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다고 노래한다. 시인의 운명은 주님 손에 달려있으니 원수와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져달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환한 얼굴로 시인을 비춰달라고 기도한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오히려 악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죽음의 땅에서 이를 갈며 잠잠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오만한 자세로 경멸하는 태도로 의로운 사람을 대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입을 막아달라고 기도한다.

(대신)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려고 마련해 두신 복이 크다고 노래한다. 주께로 피하는 사람에게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노래한다. 원수들을 목전에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복을(잔치상을) 베푸시는 주님을 노래한다. 주님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주님의 날개 그늘에 품어주셔서 거짓말쟁이들과 말다툼하는 자들로부터 지켜주신다.

시인은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지켜주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원수들의 그물에서 은총을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그물에 걸렸을 때, 시인은 주님의 눈밖에 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은 시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시인은 간구를 들어주시는 주님을 사랑하라고 독자들, 특별히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 명령한다. 주님께서 신실한 사람은 지켜주시나 거만한 사람은 가차없이 벌하신다고 노래한다. 주님을 기다리라고 노래한다. 힘을 내라고, 용기를 내라고 노래한다.

>> 현재의 고난은 주님의 눈밖에 났다는 증거가 아니다. 주님께 돌아오라는 사인이다. 주님께 신실하라고 하신다. 주님께 신실함이 곧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힘을 내고 용기를 내라고 하신다. 시인의 노래처럼 주님께 돌아가는 것도 나의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과 이끌어주심에 순종해야 가능하다.

시편 30편 읽기

1-3 주님, 주 나의 하나님, 주님. 시인은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자신에게 상을 베풀어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울부짖었을 때 고쳐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죽음에서 회복시켜주셨다고 고백한다.

4-5 시인은 자신의 경험으로 (1-3절)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님을 찬양하라고,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권면(명령)한다. 주님의 진노 중에 있더라도 진노는 잠깐이요 주님의 은총은 영원하다고 노래한다. 밤새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칠 것이라고 노래한다.

6-8 시인은 평안할 때, 태평성대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지켜 주시던 주님이 시인을 외면하시자마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주님께 다시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다. 주님께 은혜를 간구해야 했다.

9-10시인은 자신의 죽음이 주님께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노래한다. 죽음을 시인의 삶의 관점이 아니라 주님에게 유익되느냐 아니냐의 눈으로 보았다. 시인은 죽어서는 주님을 찬양하지도, 주님의 진리를 전파하지도 못한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주님을 찾는다. 주님께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노래한다. 시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시인에게 도움이 되어 달라고 간구한다.

11-12 시인의 간구에 주님은 응답하셨다. 시인의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꿔 주셨다.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히셨다. 시인의 영혼이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 시인은 주님을 찬양한다. 영원토록 감사한다.

>> 시인은 잠잠할 수 없었다. 진노의 밤중이라도 기쁨의 새벽이 올 것을 소망한다. 통곡을 기쁨으로 슬픔을 환희로 바꾸실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주님께서 시인을 수렁에서 건져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고쳐주시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 주셨던 주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안할 때, 시인이 주님을 찾지 않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 시인을 외면하시면 평안이 깨어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지금 편안하다고, 이 평안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고통 중에라도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님의 외면을 받지 않는 임마누엘을 삶,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로 옷입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시편 29편 읽기

시인은 하나님을 모시는 권능 있는 자들에게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리고 또 돌려드리라고 명령한다. 다시말해 (영광과) 권능은 주님께만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 주님께 어울리는 영광을 돌려드리라고 명령한다.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리라고 명령한다.

시인은 주님의 목소리가 물위로 울려퍼진다고 노래한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 물, 곧 많은 물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위엄이 넘친다고 노래한다. 주님께서는 목소리, 곧 말씀으로 백향목, 곧 레바논을 장작패듯 하신다. 레바논은 장작패듯 부서진 조각들 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튄다. 주님의 목소리는 번개처럼 번뜩이며 천둥처럼 쩌렁쩌렁 울린다. 주님의 목소리는 광야도 뒤흔드신다. 주님의 목소리에 암사슴은 놀라 낙태하고 우거진 숲은 민둥산이 된다. (오직) 하나님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만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외친다.

주님께서는 거센 물결도 거스리시는, 모든 것을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이 되신다. 왕되신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을 주님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주신다.

>> 아등바등(아둥바둥) 살지만 세상 조류에 휩쓸려 둥둥 떠내려가는 나를 본다. 여전히 세상 것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거센 물결도, 홍수도 잠잠케 하시는 영원한 왕이신 주님만 붙잡아야 하는데, 주께만 순종해야 하는데… (영광과) 권능은 오직 주께만 있다는 것을 선언해야 하는데… 시인처럼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을 삶의 구호로 삼아야 하는데…

혼자는 힘드니깐 하나님의 성전에 모이라 하신다. 믿음의 사람들 (의인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세상 조류를 이기라고 하신다.  주님을 따르는 백성에게 주시는 샬롬을 누리라고 하신다.

시편 28편 읽기

1 반석이신 나의 주님, 내가 주님게 부르짖으니 귀를 막고 계시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입을 다무시면, 내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같이 될까 두렵기만 합니다. // 시인은 주님만 반석으로 의지하는데 주님은 반응이 없다. 주님과 의논하지 못한다면, 다시말해 주님과의 사귐이 끊어졌다면, 이것이 곧 영생에서 끊어진 것이다. 시인이 두려울 수 밖에 없다.

2 시인은 주님의 지성소를 바라본다. 두 손을 치켜들고 주님께 울부짖으며 애원한다. // 시인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현관에서 기다릴 수만 없어서 안방까지 다가가서 손을 들고 애원한다.

3-5시인은 주님께 자신을 악인들, 사악한 자들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악인들과 사악한 자들은 평화를 말하지만 속마음에는 악을 품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악인들과 사악한 자들의 행위와 행실을 따라 그들에게 갚아 달라고 간구한다. 그들이 한 그대로 그들에게 갚아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주님이 하신일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멸해 달라고 울부짖는다.

6-9 시인은 시인의 간구를 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이 시인의 힘, 방패, 굳게 의지할 분,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온맘으로 주님을 기뻐하며 노래부르며 주님께 감사한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에게 힘이 되어주신다. 시인은 (28편도 ‘다윗의 시’다)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워주신 주님만이 구원의 요새라고 노래한다. 이제 주님이 세워주신 왕으로서 자신에게 맡겨 주신 주님의 백성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소유인 백성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노래한다. 참되신 왕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깨닫는다. 그래서 주님께 영원토록 백성들의 목자가 되셔서 백성들을 보살펴 달라고 기도한다.

>> 오늘 시인도 다윗이라고 한다. 다윗은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윗의 나라을 영원히 견고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삼하 7). 그런데 주변에 주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이 약속 (언약)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도전에 직면하였기에 이런 노래(시)를 부르는 것이다. 다윗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집과 다윗의 나라가 주님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약속에 힘입어, 주님의 언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하찮게 여기는 악인들, 사악한 자들을 멸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곧바로 약속에 힘입어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한다. 주님의 약속에 이미 기도에 대한 응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시편 27편 읽기

1-3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시인은 다윗이라고 한다.) 시인은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고 반문하지만 주님을 생명의 피난처로 삼아야 할만큼 두려움과 무서움에 맞닥드려 이 노래를 하는 것이다. 대적자들 원수들 군대들의 공격에서 시인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노래한다.

4-6 시인은 주님께 단 하나의 소원을 아뢴다. 시인의 소원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를 경험하고,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말해 주님을 집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다고 노래한다. 집주인이 시인을 집에서 내쫓지 않는 자비를 경험하며 살겠다고 노래한다. 집주인과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주님의 집에 살면 재난의 날도, 원수들의 애워쌈도 이길 수 있다고 노래한다. 집주인을 찬양하며 살겠다고 노래한다.

7-10시인은 주님을 애타게 부르니 주님이 들어달라고, 시인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노래한다. 시인이 주님께서 시인을 예배자의 자리에 부르셨을 때, 시인이 예배자로 살겠다고 대답한 것처럼, 주님께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노하지 마시고, 물리치지 마시고 도움을 베풀어 달라고 노래한다.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노래한다. 주님만이 구원의 하나님이시라고 노래한다. 육신의 부모보다 주님께 의지한다.

11-14 시인은 주님의 길을 가르쳐달라고 노래한다. 원수들이 매복하고 있으니 시인을 안전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노래한다. 원수들에게 시인의 목숨을 맡기지 말아달라고 노래한다. 시인의 믿음처럼 한평생 주님의 은덕을 입으며 살아가겠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그러니 주님을 기다린다고,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린다고 노래한다.

>>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지도 모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담대함은 시인의 노래처럼 주님의 약속에 기인한다.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

나로 하여금  ‘한평생 하나님나라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고, 성전의 지체로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응답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다시 오실 주임을 기다리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