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6편 읽기

주님, 나의 무죄함을 밝히시는 변호사가 되어 주십시오. 지금까지 올바르게 살았으며, 주님만을 철석깥이 믿고있습니다. 샅샅이 캐어보시고, 내 마음도 속속들이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결같이 의지할 것이라곤 주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주님의 진리를 따라 살아왔습니다. 헛된 것을 좋아하는 사기꾼들과 어울리지도 않았고 음흉한 자들과도 친구를 맺지 않았습니다. 악인들의 모임에는 끼지도 않았고 나쁜 자들과 함께 앉지도 않았습니다.

주님, 내가 손을 씻어 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이 압니다. 저는 주님께 나아가 감사의 노래를 높이 부릅니다. 주님이 나에게 해 주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겠습니다.

주님, 주님게서 계시는 집을 내가 사랑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그곳을 내가 사랑합니다. 나의 생명(목숨)을 죄인의 목숨과 함께 취급하지 마십시오. 나의 생명을 살인자들의 생명과 함께 거두지 마십시오. 그들은 한손에 음란한 우상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뇌물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는 깨끗하게 살려고 합니다. 나의 몸을 구해 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내가 선 자리가 든든하오니, 예배하는 모임에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 26편도 다윗의 시라고 한다. 다윗은 주님을 변호사로 선임한다. 주님이 재판관이 아니신가? 다윗은 지금까지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알고 계신 주님께, 자신을 샅샅이 캐어보라고 자신있게 말을 하지만, 주님의 진리를 따라 살아왔다고 노래하지만, 우리가 알듯이, 다윗이 함게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기꾼, 음흉한 자들, 악인들, 나쁜 자들과 다를게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다윗이 노래하듯 다윗은 손을 씻었다. 음란한 우상을 들었던 손도 씻고, 뇌물을 받았던 손도 씻고 주님과 함께 하길 원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성전에서) 깨끗하게 살려고 했다.

주님이 속속들이 내 마음을 살피신다면 죄없다 못하실 것이나, 주님이 나에게 해 주신 놀라운 일들로 인해 나도 주님을 변호사로 모십니다. 주님을 변호사로 모셨으니, 변호사가 하라는 대로,  하나님나라 백성답게 더욱더 깨끗하게 살겠습니다. 예배자로 살겠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시편 25편 읽기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주십시오.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합없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제게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을 기억해 주십시오 . / (그러나) 제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는 마십시오.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저와 같은 죄인들을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가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라도, 제가 저지를 큰 죄악을용서해 주십시오. / 제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선택해야 할 길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생애를 편안히 살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자손들로 하여금 그 믿음을 유업으로 받게 하옵소서. / 주님께서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의논하시며 (언약을 맺으시며),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님의 언약이 진실됨을 확인해 주십시오. / 주님만이 (언약대로) 내 발을 원수의 올무에서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 눈은 (언약대로) 언제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 나를 돌봐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고난가운데 팽개치지 마십시오. / 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나를 아픔에서 건져주십시오. / 내 괴로움과 근심을 살펴 주십시오.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 내 원수들을 지켜 봐 주십시오. 나를 (괴롭히는) 원수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증오심으로 나를 미워합니다. / 원수들로부터 내 생명을 지켜 주십시오. 나를 건져 주십시오. 원수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 피합니다.

주님,  완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지켜 주십시오. 나는 주님만 기다립니다. 창조주 하나님,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을)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 주십시오.

>> 시편 25편도 ‘다윗의 시’라고 한다. 다윗은 성문을 열어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을 성으로 모시는 24편의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못하고, 마치 주님이 저 멀리 계시는 듯,  ‘주님’을 다시 부른다. ‘주님’ ‘주님’ ‘주님’! 다윗은 하나님을 성안으로 모시기에, 문을 열어 주님을 모시기에 자신은 불완전하고 올바르게 살고있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주님만 의지해야 하는데,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길을 가야 하는데,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데… 돌아보면 주님은 약속에 신실하셔서 긍휼과 한결 같은 사랑으로 베풀어주셨는데, 자신의 발자취는 죄와 반역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그래서 다윗은 겸손히 노래한다. 주님 제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다시 주님을 경외하겠습니다. 주님의 언약 안에 살겠습니다. 다윗은 언약 안에 살아서 주님의 언약이 신실함을 확인하겠다고 다짐한다. 주님의 신실하심이야말로 주님이 나를 돌보시는 증거요, 은혜요, 임마누엘이라고 노래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나를 지켜볼 것이다. 내가 완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가야할 이유다. 내 힘으로는 안되니 다윗처럼 ‘주님, 완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지켜주십시오’ 라고 노래해본다. 이것이 고난에서 건짐을 받는 길이다.

주님만이 (언약대로) 내 발을 원수의 올무에서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 눈은 (언약대로) 언제난 주님을 바라봅니다.

시편 24편

1-6 세상 만물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것 / 주 하나님께서 바다와 강도 지으셨다.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주님이 계신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을까? /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구원자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 / 그런 사람은 주님을 찾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사모하는 사람이다.

7-10 문들은 머리를 들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곧 성도들은 영원한 문을 열어 영광의 왕을 모시는 자들이다. /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힘이 세고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전쟁의 용사이신 주님이시다. /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사모하는 자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을 열어 영광의 왕을 모셔라. /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만군의 주님이시다. 그분이야말로 영광의 왕이시다.

>> 성도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계신곳, 그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깨끗한 손, 곧 악을 행하지 않는 자들이요, 해맑은 마음, 곧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뵐 것이라고 하셨다.) 또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시말해 두 마음, 두 주인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대로 정직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복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 이런 사람이 다시 주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사모한다.  7절부터 10절은 주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자들, 곧 의인의 회중, 시온 산, 거룩한 성이, 성에 있는 문들을 열고 왕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맞이하는 노래다. 하나님을 개선장군인양 노래한다. 우리 성도들이 모시는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도 승전하신 왕이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런 주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하신다. 문을 열라고 하신다.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와 나와 더불어 먹겠다고 하신다. 나로 주님과 더불어 먹으라고 하신다. 임마누엘!

고린도후서 13:1-13 읽기

1-4 바울은 세번째 고린도에 가고 싶다고 편지한다. 증인 두세 사람을 데리고 가서 모든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두번째 방문했을 때 만났던 죄 지은 자들을 세번째 고린도를 방문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죄인들을 용서하지 않는 담대한 바울을 고린도 성도들이 보게되면,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강하게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고린도 성도들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심을 상기시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믿는 바울 일행도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존재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존재로) 고린도 성도들을 대할 것이라고 말한다.

5-7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들을 시험하고 믿음 안에 있음을 확증하라고 명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성도들 안에 계신 줄을 알라고 말한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성도들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실격자 (버림받은 자)라고 말한다. 바울 일행은 버림받은 자가 아닌 것을 고린도 성도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고린도 성도들도 버림받은 자가 되는 악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바울 일행이 버림받은 자가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령 바울 일행이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고리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곧 버림받지 않는 자로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고 말한다.

 8-10 바울 일행은 진리를 거스리는 일을 할 수 없고, 진리를 위하는 일만 할 뿐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들은 약하더라도 고린도 성도들이 강하다면 기뻐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다고 전한다. 대면해서 담대하게 용서하지 않는 말을 하지 않도록, 고린도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우려고 편지를 쓴다고 전한다.

11-13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라고 명령하며 편지를 마무리한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 계심’ 으로 축복한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고 권면한다. 바울과 함께 한 모든 성도가 고린도 교회와 온 아가야 성도들에게 13절 말씀으로 문안한다고 전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하고,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 거하심으로 담대히 고린도 성도들을 대하겠다며 편지를 마무리 한다. 자신은 약하고 버림받을 지라도 고린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고 버림받지 않은 자로 행하기를 바란다. 약하지 않으신 그리스도께서 약함을 택하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듯,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서 약함을 택해 고린도 성도들이 악을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하나님께 바란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성도의 삶이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이야 말로 성도들의 사귐을 온전하게 한다.

고린도후서 12:14-21 읽기

14-15 바울은 세번째로 고린도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편지한다. 바울은 이번에도 고린도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다시말해 사례비를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바울이 세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는 재물이 아니라 고린도성도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과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비유한다. 부모입장인 바울이 자녀입장인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재산을 모아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바울은 비용을 써가면서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고린도를 방문하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하는 것을 몸까지 희생하는 일이라고 밝힌다. (무슨 뜻?) 바울이 이같이 고린도 성도들을 사랑하는데,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덜 사랑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16-18 어쨌든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짐이 된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바울이 간교한 속임수로 고린도 성도들을 꼬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낸 디도와 형제들을 통해서도 고리도 성도들을 착취한 일이 없었음을 천명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환대한 바울이보낸 디도와 같은 정신 같은 방식으로 산다고 말한다.

19-2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성도로써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라고 다정히 부른다. 이 편지가 고린도 성도들에게 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바울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며, 또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여전히 싸움과 시기와 분노와 경쟁심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교만과 무질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에 다시 갈 때에, 이런 고린도 성도들 때문에 하나님께 바울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또 죄를 지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한 부정함과 음란함과 방탕함을 회개하지 않은 것을 보고 슬피 울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 바울은 관심은 부모된 바울이 자식된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라고 구구절절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바울은 성도들 간의 관계는 수수하는 관계나 매매하는 관계가 아니라 사랑하는 관계라고 교훈한다. 서로에게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되는 관계가 아니라 덕이 되는 관계라고 편지한다.

>>> (성도라면 불신 영혼에 대한 애통함보다 불순종 형제에 대한 슬픔이 더 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