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1-13 읽기

1 바울은 자랑해봤자 자신에게 이롭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미 자랑하기 시작했으니, 주님께서 보여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한다고 말한다.

2-5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다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주석가들은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가 바울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는 십사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다고 한다. 하늘로 이끌려 올라갈 때 몸째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 영혼만 올라갔는지, 바울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렇게 셋째 하늘까지 올라간 사람을 안다고 말한다. 자신도 모르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고 거듭 강조한다. 바울은 셋째 하늘까지 올라간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되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한다. 바울은 이렇게 낙원을 경험하고도, 그 경험을 말로 표현하지도, 낙원에서 들은 말씀을 말로 전하지도 않는 사람을 자신대신 자랑한다고 말한다. 바울 자신에게서는 약점말고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6-10 바울은 자신이 자랑을 하더라도,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에 어리석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도 자랑은 삼가겠다고 태도를 바꾼다. 바울은 드러난 자신의 삶과 가르침으로 평가받겠다고 말한다. 괜히 바울 자신이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과대평가를 받지 않겠다고 말한다. 오히려 바울은 사람들의 과대평가로 자신이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바울의 몸에 가시를 주셨음을 시인한다. 하나님께서 바울 몸의 가시로 바울을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이 가시를 자신에게서 떠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세번이나 간청하였지만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완전하게 된다” 라고 응답하셨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 응답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울 자신에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더욱 더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약점들을 자랑하겠다고 말한다. 바울이 세번이나 간청한 가시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굳이 언급하지 않았어도 그 가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여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한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약할 그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울에게 머물러)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1-13 바울은 자랑하는 자가 되어버렸다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시인한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랑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자칭 소위 거물급 사도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신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 있으면서 사도된 표징을 행하였다고 말한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보수를 받지 않고 섬겼다고 말한다.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고린도 성도들을 배려한 것이 다른 교회들과 다르게 차별한 것이되었다면 용서해 달라고 사과한다.

>> ‘주님의 은혜가 나에게 족하다. 주님의 능력은 약한 나에게서 완전하게 된다.’ 바울의 자랑은 결국 주님 안에서 주님만을 자랑하는 것으로 끝난다.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내’가 받은 은혜가 ‘나’에게 족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복을 세어보지 않았다.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에 만족하는 것이다. 바울은 ‘주님’의 능력은 약한 ‘나’에게서 완전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나의 능력이 주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약하지만 ‘주님’의 능력이 약한 자신을 완전하게 하신다는 고백이다. 철저하게 주님이 주어다. 주님은 흥하여야 하고 바울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는 태도에 변함이 없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면, 이땅에서 하나님나라를 맛보며 살고자 한다면 더욱더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요 성도가 받아야 할 복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주님께 굴복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1:16-33 읽기

16-21 바울은 거듭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것을 자랑한다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아니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자랑 좀 해야겠다고 말한다. 심지어 주님의 지시를 따라서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화자찬하는 사람처럼 어리석게라도 (자신의 사도된 것을 ) 말하겠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처럼 육신의 일을 가지고 자랑하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슬기로운 사람들이라서 (비꼬는 투다) 어린석은 말을 해도 잘 참고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말을 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종으로 부림을 당해도, 잡혀먹혀도, 놀림을 당해도, 얕보임을 당해도, 뺨을 맞아도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그러기에 바울은 어리석은 말인 줄 알지만, 부끄럽지만 터 놓고 그동안 감히 하지 못했던 자랑을 해보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다시한번 자기 자랑은 어리석은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을 한다.

22-30 바울은 자신을 비방하는 소위 자칭 거물급 사도들과 같은 히브리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듯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밝힌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듯 자신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자칭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주장한다면 자신은 더욱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한다. 바울 자신이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 했다고 말한다. 바울은 채찍으로 맞고 돌로 맞고 파선도 당하고 밤낮으로 바다에 표류하고,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과 이방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의 위험을 당했다고 말한다. 수고하고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번 밤을 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덜고 헐벗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환난과 고난보다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부담감이 더 컸다고 고백한다.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에서 약해지면 공동운명체인 바울도 약해졌고 누가 넘어지만 바울이 마음 아팠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자신의 약점들을 자랑하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결국 어리석게 자화자찬하지 못하고 만다.)

31-33 바울은 영원히 찬양받으실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아신다고 말한다. 바울은 구체적인 사건을 예를 든다. 다마스쿠스에서 아레다 왕의 총리가  바울을 잡으려고 했을 때 교우들이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의 창문으로 내려주서 탈출했다고 말한다.

>> 바울은 자랑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은 자화자찬을 못하고 만다. 왜냐하면 복음과 함께 고난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이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특권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말한다. 성도라면 그리스도를 흥하게 하고 자신은 쇠하는 것을 자랑(간증)해야 한다. 그리스도도 흥하고 나도 흥하고가 아니다. 바울의 자랑을 다시 읽는다. 수고와 환난과 고난과 교회를 염려함으로 점철되어있다. 바울은 약점을 자랑하게 된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들 자랑하게 된다. 결국 주 안에서 주님만 자랑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의 삶을 살게 하소서.

고린도후서 11:1-15 읽기

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이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달라고 부탁한다.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던 바울이, ‘주님만 자랑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바울이 자기 자신을 자랑하더라도 용납해 달라고 말을 꺼낸다.

2-6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사랑)으로,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 할 고린도 성도들을 염려한다. 왜냐하면 뱀이 하와를 속인 것 같이, 고린도 성도들의 생각이 부패해서,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순결함을 저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 일행이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하는 어떤 사람들을 잘 용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성령 외에도 다른 영을 잘도 받아들이고 다른 복음도 잘도 받아들인다고 지적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이렇게 다른 예수, 다른 성령,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드를 거물급 사도라고 인정했었다. 그래서 바울은 소위 거물급 사도들보다 자신이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말재주는 없을지라도 , 지식에는 재주가 있는 사람임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미 여라가지 일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7-1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했다고 말한다. 즉 고린도 성도들로부터 사역비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무보수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죄가 되느냐고 반문한다. 고린도에서 사역하기 위해 다른 여러 교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고 밝힌다. 이것은 다른 교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할 비용을 고린도 교회가 빼앗은 셈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동안 가난하다는 이유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누를 끼친 일이 없다고 말한다. 다른 교회 성도들이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라고 밝힌다) 바울이 필요로 하는 것을 후원했다고 말한다. 바울 자신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런 자신을 주 안에서 자랑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진실을 걸고 ‘아가야 지방에서는 아무도 바울 자신의 이런 자랑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을 이같이 섬긴 것은 고린도 성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뉘앙스는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무보수로 섬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고 ‘맹세’한다.

12-15 바울은 앞으로도 자신의 이런 사역방침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소위 자칭 거물급 사도들처럼, 자신들의 사역이 바울 일행의 사역과 무엇이 다르냐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자랑할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이런 사람들을 거짓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도인 척하는 사람들이라고 경고한다. 거짓사도들이 삯꾼들이 판치는 이런 일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말한다.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놀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마지마근 그들이 행한대로 될 것이라고 일침을 날린다.

>> 사실 간증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어찌 말로 정리할 수 있을까? 끝까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내야 할 뿐이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자랑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오직 간증하는 자와 간증을 듣는 자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서다.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않기 위해서다. 다른 예수, 다른 성령, 다른 복음이 난무하는 시대가 아닌가? 소위 거물급 자칭 목사들도 얼마나 많은가? 자신을 낮추는 자, 가난한 가운데서도 사랑으로 사역하는 자가 되라고 교훈하신다.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도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행한대로 될 것이라는 바울의 일침에 주의하자. 성도들의 마지막도 성도들이 행한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순결한 신부로, 주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작은 소자를 섬기지 못한다면, 주여 주여 한들 주께서 그런 자들을 반겨주실리 만무다. 자기 상을 이미 받은 자로 살지 말라고 하신다.

고린도후서 10:1-18 읽기

1-6 나 바울은… 보다 개인적인 편지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관대하심을 힘입어 고린도 성도들에게 권면한다. 사람들은 바울을 대면하여 함께 일할 때는 분명히 유순한 사람이었는데, 떠나 있는 지금 강경하게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울이 다시 고린도를 찾았을 때에 고린도 성도들에게 강경하게 대해야 할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바울 일행이 육정을 따라서 처신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그러나 바울은 육신을 입고 살고 있지만 육정을 따라 싸우는 것은 아니라고 담대히 말한다. 바울은 자신들이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다고 높아진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궤변을 무찌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강력한 무기라고 선언한다.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고린도 성도들이 온전히 순종하게 될 때, 바울 일행은 순종하지 않는 자를 처벌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이다.)

7-1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겉모양으로 판단한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바울 일행도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되었음을 (1:1) 지나치게 자랑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받은 사도의 권위는 주님이 고린도 성도들을 세우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바울은 편지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강경하게 (겁을 주려고) 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편지는 강경하지만 대면하면 바울은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편지로 쓰는 말이나 대면하여 행하는 일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라고 한다.

12-18 바울 일행은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과 비교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자화자찬하는 (혹은 자포자기하는) 자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책망한다. 바울 일행은 믿음의 분수대로 자랑한다고 말한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를 방문한 것도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에게 정해 주신 한계 안에서 된 일이라고 말한다. 주제넘게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울이 사도권을 운운하는 것은 고린도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고린도 성도들로 말미암아 (도움으로?) 다른 지역에도 더 넓게 확장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이루어 놓은 일을 가로채로는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라고 번역한다.) 참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님 안에서 자랑하는 자다. 주님 안에서 자화자찬이란 있을 수 없다. 공동번역처럼 주님을 자랑하는 자다. 물론 자포자기하는 자도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궤변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교만한 생각도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것이 주님을 자랑하는 방법이라고  교훈한다. 바울은 사도권의 스팩을 쌓기 위해 사역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한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드러내는 자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자들이라고 가르치셨다. 성도들은 참된 인정, 주님의 칭찬을 받아야 한다.

** 예수께서는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라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 모두에게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했다고 하신다. 믿음의 분수대로 충성하라고 하신다. 자포자기하는 것은 악하고 게으르다고 하신다. 주님의 칭찬이야 말로 영생이다. 영생은 주님만 자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칭찬이다.

고린도후서 9:1-15 읽기

1-5 바울은 ‘이 은혜로운 일’이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는 일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힌다. 바울은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구제하자고 더 이상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 성도들의 열성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성도들에, 아가야 성도들은 지난 해부터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랑했다고 말한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고린도 성도들의 이런 열성을 듣고서 분발하였다고 말한다. 바울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고린도 성도들의 열성을 듣고서 분발한 것과 같이,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자랑한 것이 헛된 말이 되지 않도록, 고린도 성도들이 유대 성도들을 돕는 일에 준비하는 일에 분발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라고 편지한다. 혹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바울과 함게 고린도에 갔을 때, 고린도 성도들이 준비하고 있지 않는것을보면, 준비 안한 고린도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바울 일행도 고린도 성도들의 열성을 자랑한 확신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까 염려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린도 성도들이 전에 약속한 선물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형제들을 먼저 보낸다고 말한다. 유대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은 선물이요, 마지 못해서 낸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마련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6-10 바울은 (구제의) 요점정리를 한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일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음에 정한대로 해야 한다. 아까워하면서 혹은 마지 못해서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야 말로 성도들에게 온갖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바울은 “그가 가난한 사람드레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는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하나님께서 심는 사람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듯, 성도들에게도 씨를 마련해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성도들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이라고 인용한 말씀을 적용한다.

11-15 (이렇듯) 고린도 성도들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고린도 성도들이 후하게 헌금하게 하실 것이라고 전한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 성도들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들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구제(물질의 봉사)는 가난한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이다. 이 구제의 결과로 (유대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말한다. 물질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그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감사와 함께, 고린도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사모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말로 다 형언 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 구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가장 구체적인 삶이다. 눅12:31-34 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적은 무리의 사람이겠지만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라고 가르치셨다.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구제의 삶으로 적용하셨다. 구제의 삶을 하늘에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삶이라고 가르치셨다. 바울은 ‘균등’의 원리를 이미 말했다. 시이소 타는 것이다. 무거운 어른이 발을 딛어주어야 가벼운 아이도 시이소를 탈 수 있다. 남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어도 하나님께서는 주는 자에게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이다. 구제는 궁핍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전하는 가장 구체적인 삶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