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1-21 읽기

1a 그 때에 (홍해를 건너고)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했다.  1b-18 [내가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지없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말과 기병을 바다에 쳐넣으셨습니다. 주님의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그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이 내 조상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그 하나님을 높입니다. 주님은 용사십니다. 주님의 이름이 곧 주님입니다.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키셨습니다. 이집트의 빼어난 장교들이 홍해에 빠져 죽었습니다. 깊은 물이 그들을 삼켰고 무거운 돌처럼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주의 오른손으로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이 오른손으로 원수를 쳐부셨습니다. 주님께서 큰 위엄으로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내던지셨습니다. 주님의 분노에 그들은 검불처럼 불살라졌습니다. 주님은 콧김으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원수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아 자신들이 욕망을 채우고자 말했지만, 주님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니 갈라졌던 바다가 다시 그들을 덮쳤고 그들은 납덩이처럼 바다에 잠겨 버렸습니다. 주님, 신들 가운데서 주님과 같은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다. 주님과 같이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시며, 찬양받을 위엄이 있으시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오른팔을 내미시니, 땅이 대적을 삼켜버렸습니다. 주님께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손수 구원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주시고, 주님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의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모든 민족이 두려워서 떱니다. 블레셋 주님이 겁에 질렸습니다. 에돔의 지도자들이 놀라고 모압의 권력자들도 무서워 떱니다. 가나안의 모든 주민도 낙담합니다. 그들이 모두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주님의 권능의 팔때문에 주님의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돌처럼 잠잠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려다가 주님의 소유인 주님의 산에 심으실 것입니다. 주님 이곳이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심으신 곳이) 바로 주님께서 계시려고 만드신 곳입니다. 주님께서 이곳에 손수 성소를 세우십니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성소에서) 다스릴 것입니다.]

19 바로의 군마가 이스라엘 백성을 좇아 갈라진 홍해로 들어갔을 때, 주님께서 바닷물을 돌이키셔서 그들을 덮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홍해를 건넜다. 20 그때에 아론의 누이, 예언자 미리엄이 손에 소구를 들자, 여인들이 미리엄을 따라 나와 소구를 들고 춤을 추었다. 21 미리엄이 다음과 같이 노래를 선창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하나님게서 이집트의 말과 기병을 바다에 쳐넣으셨습니다.”

//바로와 이집트 대군을 깊은 바다에 무거운 돌과 납덩이처럼 수장시키신 주님이 다가올 대적들도 돌처럼 만드실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의 기쁨을 노래할 뿐만 아니라, 비록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의 힘으로 성도를 주님의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여 주신다는 소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성도는 성소에서 영원토록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다. 모세와 백성의 노래와 미리엄과 여인들의 노래가 다르지 않았듯이 성도가 불러야 할 노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불러야 할 노래다.    

갈라디아서 6:11-18 읽기

11 바울은 수신자들에게 (아마도 눈이 나빠) 큰 글자로 친필로 편지를 마무리 한다고 적는다. 12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한다고 주의를 준다.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꺼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유대인들은 구약에 따라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는 저주 바든 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박해할 수밖에 없다.) 면하고자 한다. 13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모든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한다. 바울은 그들이 자랑하는 것이 육체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14 바울 자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은 세상에 대하여 죽었고, 세상은 자신에 대하여 죽었다고 설명한다. 15 (따라서) ‘할례냐 무할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6 바울은 이 새로운 표준, 곧 새롭게 ‘창조되었느냐 아니냐’가 (요한복음서에서 예수께서 하신 표현을 따르면, 거듭났느냐 아니냐) 중요하다. 이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백성이요, 영적 이스라엘이요, 평화와 자비를 누린다고 편지한다. 17 바울은 더 이상 유대교 신앙과 전통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편지한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있는 할례의 흔적을 자랑하지 않고 예수의 상처자국을 지고 다닌다고 (자랑)한다. 18 바울은 갈라디아 형제자매들의 심령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아멘으로 기원하며 편지를 마친다.

//갈라디아서의 복음은 유대교 신앙과 전통에서 난 복음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을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구원을 성령을 받는 것, 성도를 성령으로 난 자라고 풀어왔다. 거듭난 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된 자는, 초대 교회 성도가 더이상 유대교 신앙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듯이, 기독교 신앙과 전통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성도의 심령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아벤으로 기원하며 편지를 맺는 이유다. 내가 형통한 것을 은혜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은혜는 나의 구원과 결부된 문제다. 다 가진 것 같아도, 자랑할 것이 육체 뿐이면, 곧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갈라디아서 6:1-10 읽기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성령으로 산다.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는대로 살아간다.]

1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 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로서,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하고, 또 자신도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서로 남의 짐을 져야 한다. 바울은 서로 남의 짐을 지는 것이 (율법을 온전케 하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3 어던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성도가 자신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5 성도는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한다. (자기 짐뿐 아니라, 남의 짐을 나눠져야할 몫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6 (특별히)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7 바울은 다시 한번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명령한다. (스스로 무엇인가 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 8 자기 육체에다 삼는 사람은 육체에서 썪을 것을 거둔다.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둔다. 9 (따라서) 선한 일을 하다가 (성령에다 심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띠라 이를 때에 (영생을)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자고 권면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선한 일을 (성령에다 심는 일을) 하자고 권면한다. 

//성령으로 난 성도는 율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율법을 따르면 처벌은 할 수 있겠지만 죄를 바로 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죄를 바로 잡기위한 해결책으로 비판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령한다.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이라고 바울은 가르친다. 매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야마로 성령에다 심는 삶이요 영생을 거두는 삶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라는 명령도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대하라는 뜻이다. 법의 (기독교신앙과 전통의) 잣대를 버리고 성령의 잣대를 대야 한다. (우리 눈에 들쑥날쑥하게 보이는) 성령의 잣대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전통의 잣대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갈라디아서 5:16-26 읽기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 곧 성령으로 난 사람을 율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16 바울은 재차 갈라디아 교회 성도에게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라고 명령(권면)한다. 그래야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을 지키려는 것을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주목하자)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린다.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리기 때문이다. 성령과 육체는 서로 적대적이다. 두 주인이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18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율법 아래 있을 수 없다. 19 육체의 행실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것과, 이런 류의 것들이다. 바울은 전에도, 이번엗 육체의 행실에 대해 경고한다. 이런 짓들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22 육체와 적대적인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다. 23 바울은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다고 선언한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다. 25 대신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성령으로 산다.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대로 살아간다. 26 성도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육체의 행실에서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술취암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것은 개인적인 성품/성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결국 스스로를 아무리 경건하게 포장해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 육체의 행실을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도 성도가 맺어야 할 개인적인 성품의 열매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내야 하는 성품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의 기쁨, 공동체 안에서의 화평, 이웃과의 관계에서 인내하고 친절하고 선하고 신실하고 온유하고 절제해야 한다. 바울은 이런 것을 막을 법이 없다고 선언한다. 기독교 신앙과 전통이 (1차 독자들에게는 유대교 신앙과 전통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막을 수 없다. 성도는 성령으로 산다.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산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성도는 개인의 경건을 자랑하거나, 기독교 신앙과 전통으로 서로 다투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오직 성도는 성령으로 산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성도는 의인이며 성령은 믿음이다. 따라서 성도의 믿음은 나의 열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신실하게 반응(순종)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15 읽기

[바울은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상속자며, 성도는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라고 했다.]

1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은혜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권면한다. 2 바울은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단정한다. 3 바울은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5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다면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려야 한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냐 무할례냐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이다.

7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에게, 지금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달려왔다고 칭찬한다. 그런데 누가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가로막아서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느냐고 묻는다. 8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연히 성도를 부르신 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9 적은 누룩이 반북 전체를 부풀게 하듯 10 다른 생각은 진리를 오염시킨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가 다른 생각을 조금도 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한다. 갈라디아 성도를 교란시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11 바울은 자신이 할례를 전한다면 박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십자가의 거리낌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바울이 받는 박해가 주로 유대교 신앙과 전통을 따르며, 십자가를 꺼림직하게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2 바울은 할례를 가지고 선동하는 지체들을 갈라디아 교회에서 잘라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13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바울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데 사용하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고 명령한다. 14 바울은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으로 정리한다. 15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곧 서로 싸우면 멸망하고 말 것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인 성도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유를 누려는 자들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할례와 율법을 이행해야 할 의무에서 해방시켜 주셨다고 선언한다. 이 그리스도의 은혜에 신실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의 마음에 부어진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믿음의 경주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충성하는 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경주다. 그리고 믿음의 경주는 결승점(소망)이 있다. 바울은 결승점을 향해 자유를 누리며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명령한다. 믿음의 경주의 핵심은 율법의 완성인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