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1-7 읽기

1-2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한꺼번에 미스바에서 주님 앞에 모였다. 당연히 이스라엘 온 지파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에 참석했다. 칼을 찬 군인들도 사십만 명이나 모였다. 베냐민 자손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3-7 총회에서 그 레위 남자를 불러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레위 남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첩을 데리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로 가서 하룻밤을 묵을 셈이었다. 그날 밤, 기브아 사람들이 몰려와 나를 해치려고, 내가 묵고 있던 집을 둘러쌓다. 그들은 나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나 대신 내 첩을 폭행하여 내 첩이 죽었다. 내가 나의 첩의 주검을 토막내어 이스라엘이 유산으로 받은 모든 지역으로 보냈다. 나는 베냐민 땅 기브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이처럼 음란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했다는 것을 고발한다.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자손이라면, 여러분의 생각과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미스바 총회. 사관은 ‘주님 앞에 모였다.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 라고 기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주권자, 곧 왕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지 않겠다는 시도다. 총회로 모였다고 과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것인가? //이스라엘은 ‘이런 수치스러운 일’로 총회를 개최했다.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란 무엇일까? 기브아 불량배들이 레위 남자의 첩을 윤간해서 죽인 사건일까? 아니면 레위 남자가 자기 첩의 주검을 열두조각 내서 이스라엘 온 지역에 보낸 것일까? //총회는 고발자 레위 남자의 진술만 들었지, 가해자들은 부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레위 남자의 고발을 확인할 노인을 증인으로 부르지도 않았다. 하여간 레위 남자는 자기가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주었다는 사실은 숨긴채, 불량배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거짓말을 덧붙여 베냐민 땅 기브아 사람들을 고발했다. //주님 앞에 모였다면 주님의 생각과 대책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자손은 레위 남자의 진술을 듣기에만 급급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으면 사람의 생각과 대책을 내기보다 주님의 뜻과 대책을 들어야 한다. 

사사기 19:22-30 읽기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집으로 환대해 먹고 마시며 쉬고 있을 때, 동네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쌌다. 그들은 문을 두들기며 노인에게 레위남자를 자기들에게 내어 달라고 말했다. 노인은 불량배들에게 이같은 악행을 저지를 말라고 말했다. 자기 손님들에게 망령된 일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대신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주겠으니, 레위남자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말했다. 불량배들의 막무가내에 레위남자는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불량배들은 밤새도록 그 여자를 윤간하고 새벽에야 놓아주었다. 동틀 때야, 그 여인은 노인의 집 문에 이르렀지만 결국 쓰러졌다. 아침에야 그 여인을 발견한 레위 남자는 여인의 시체를 거두어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에서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출애굽 후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었고, 보지도 못했다며,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자고 했다.

//레위 남자가 머문 기브아는 성적으로 문란한 성읍이었던 모양이다. 불량배들이 굳이 레위 남자를 불러내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레위인들이 에브라임 산당에서 제사드릴 때, 혼음과 같은 성적인 문란이 이미 만연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불량배들은 굳이 제물을 가지고 산당까지 가지 않아도 제사장과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을 것이다. 비겁한 레위 남자는 결국 첩을 자기 대신 내어주었다. 그렇다면 첩이 화가 나서 베들레헴 친정집으로 돌아간 이유도 어쩌면 레위 남자가 자기를 산당에서 성관계 대상으로 사람들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이 아닐었을까 의심하게 된다. 사사기 사관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기록하지만 롯의 때에 소돔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여간 주님께서는 이 사건을 불량배들이 저지른 단순한 음란사건으로 일단락 되지 않고, 온 이스라엘에 공론화되도록 레위 남자의 개인적인 분노를 이용하신다. (레위 남자는 개인적으로 져야 할 책임을 사회악으로 돌려버렸다.)

사사기 19:11-21 읽기

레위 남자는 베들레헴에서 첩을 데리고 종과 함께 에브라임 산지로 향해 출발했다. 그들이 여부스 가까이 갔을 때 해가 지려고 했다. 종은 여부스 성읍에서 자고 가지고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은 이방 성읍에 들어가지 말고 기브아까지 가서 유숙하자고 말했다. 그들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도착한 때는 이미 해가 졌다. 그들이 기브아 성읍 번화가로 들어가 앉아 있었지만, 그들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잠자리를 제공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침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다. 그는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지만 기브아에 살고 있었다. 노인은 길에 앉아 있는 나그네를 보고 누군지 물었다. 레위 남자는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 도중인데 아무도 자기를 영접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레위 남자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 것을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하자.) 레위 남자는 자신들은 부족함이 없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노인은 레위 남자를 안심시키며, 자신이 그들의 필요를 담당하겠으니 거리에서 유숙하지 말라 하고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노인은 그들의 나귀도 먹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발을 씻기고 함께 먹고 마셨다.

//레위 남자와 에브라임 출신 노인. 이들은 아마도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타향에 거류하는 사람들이다. 농경과 목축을 하던 이들이 고향과 가족공동체를 떠나 타향살이를 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붕괴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된다. 레위인들이 성막 일 대신 산당을 운영해야 밥벌이를 할 수 있었고, 노인과 같이 타향에 나와 저녁 늦게까지 밭일을 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동병상련의 만남이랄까. //나그네를 대접하는 율법의 가르침은 무너져 내렸다. 기브아에 도착한 레위인 일행은 저녁이라 인적이 끊어질 성문 어귀가 아니라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까지 들어갔지만 타향살이를 하고 있던 노인이 오기까지 누구에게도 환대를 받지 못했다. 타향살이를 하던 노인에게만 길을 떠난 레위인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사랑이 식은 사회가 되었다.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여호와의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성막 일 대신 산당 일을 하면서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둘러댔던 것이다. (아니 스스로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니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사회적으로 사랑이 식어버렸다. //레위인은 노인에게 도움이 필요없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노인은 강권하여 집에 대려가 대접한다. 나그네가 나그네를 대접하는모습은 어쨌든 아름답다.     

사사기 19:1-10 읽기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다’로 읽는다. 한 레위 남자가 에브라임 산골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는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한 여자를 첩으로 데려왔다. 이 여자는 레위 남자에게 화가나서, 유다 땅 베들레헴 친정으로 돌아가서 넉달을 머물렀다. 그 남편은 여자의 마음을 달래서 데려오려고 자기 종과 함께 나귀 두 마리를 끌고 길을 떠났다. 그 여자는 남편을 친정으로 맞이 했고, 장인은 그를 기쁘게 맞이했다. 장인은 사위를 사흘동안 붙들어 놓고 함께 먹고 마시며 보내주지 않았다. 나흘째 아침, 사위가 첩을 데리고 떠나려 하자 장인은 또 더 먹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리고 하룻밤 더 묵으면서 기분 좋게 쉬라고 권했다. 장인의 권유에 사위는 하룻밤을 더 묵었다. 다섯째 날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기 첩과 종을 데리고 떠나려고 했다. 장인이 거듭 권하였지만 그 사람은 일어나서 나귀 두 마리에 안장을 지우고 첩과 함께 길을 떠나 여부스(예루살렘)의 맞은쪽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이스라엘. 레위 사람이라고 하여도 다를 바가 없었다.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 노릇을 했던 레위 청년처럼, 이 남자도 유다 땅 베들레헴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곳에 가서 한 여자를 첩으로 데려왔다. 첩으로 데려왔으니 정식 결혼잔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첩을 찾으러 베들레헴으로 갔을 때, 장인은 결혼잔치를 베풀어 주려고 했을 것이다. 자기 딸을 첩이 아니라 아내로 대해 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사흘 나흘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겼다. 물론 다섯째 날, 레위 남자는 결국 첩을 데리고 떠나고 말았다. //레위 남자가 제사장인지 아닌지 불확실 하지만, 레위기에 따르면  (레21:1, 13-14) 제사장은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야 하고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나 창녀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한다. 레위 남자가 첩을 얻었다면, 아내가 이미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성적으로 문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두 레위 사람모두 에브라임 산지에 정착한 것으로 보아, 성막 제사가 무너졌고, 산당제사, 곧 우상숭배가 만연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곳에는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따른다.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과 성적 타락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결과다.

사사기 18:21-31 읽기

21-26 단 지파 육백 용사는 레위 제사장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나가는 소유물을 앞세웠다. ??? 처음부터 함께 길을 떠났나보다) 그들이 떠나 멀리 갔을 때, 미가가 이웃집 사람들을 규합하여 단 지파 사람들을 뒤쫓아왔다. 단 지파 사람들이 미가에게 왜 자신들을 쫓아오느냐고 물었다. 미가는 자기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가는 것이 말이 되냐고 따졌다. 그러나 단 지파는 무력으로 미가를 위협했고, 미가는 자기보다 강한 상대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27-31 단 지파는 미가에게서 빼앗은 신상과 제사장을 앞세워 한가하고 평화롭게 사는 라이스로 가서 라이스 백성을 칼로 쳐서 죽이고 그들의 성을 불살라 버렸다. 고립되어 살던 라이스는 이렇게 진멸당했고, 단 지파는 그곳에 성을 다시 쌓고 살았다. 본래 라이스였던 곳을 ‘단’이라고 부르며 살았다. 단 지파 자손들은 자신들이 섬길 (미가가 만든) 신상을 세웠다. 그리고 모세의 손자이며 게르손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을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단 자손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제사장 직을 맡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성막)이 실로에 있었지만 미가가 만든 우상을 그대로 두고 섬겼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곳에는 세상 가치관에 따른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단 지파 자손들은 무력으로 미가의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았다. 단 지파 자손들은 무력으로 한가롭고 평화롭게 사는 라이스 성읍을 진멸시켰다. 단 지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따랐다.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세웠고, 아론의 자손이 아닌 모세의 자손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단 지판 사람들은 종교적이었으나 올바르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사기 기자는 라이스 성읍을 한가하고 평화롭다고 수식한다. 7절에서는 평온/안전/부족한 것이 없이 부를 누린다고 묘사한다. 초창기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평온’하였다고 서술한 그 ‘평온’이라는 단어와 같다. 라이스 사람들에 대해 이방 신들을 섬긴다는 표현도 없다. 무엇보다도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었고 다른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다는 표현에서, 이들은 당시 가나안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에덴동산처럼. 욕망에 이끌린 단 지파 사람들은 정복전쟁이라고 생각하고 라이스를 진멸시켰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피를 원치 않으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