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9:15-27 읽기

15-16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이 올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셨다. 주님께서 사울을 사무엘에게 보내신 것이다. 주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영도자(왕)으로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해 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주의 백성이 이스라엘이 겪는 고난을 보셨고, 주의 백성이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말씀하신다.

17-21 사무엘이 사울을 보았을 때,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 젊은 이가 주님께서 보내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람이라고 알려주셨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다가가서 선견자의 집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사무엘은 자신이 선견자라고 소개하고 산당으로 앞서보내고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사울이 물어 볼 것은 내일 아침에 대답해 주겠다고 말했다. 사흘전에 잃어버린 암나귀들은 이미 찾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과 사울 집안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사울은 자신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고 사울 집안도 베냐민 지파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다고 겸손히 말했다.

22-25 사무엘은 사울과 사울의 종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초대받은 사람들의 윗자리에 앉혔다. 그곳에는 서른 명쯤 모여있었다. 사무엘이 요리사에게 부탁했던 것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요리사는 넓적다리와 거기에 붙어 있는 고기를 사울 앞에 놓았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권했고, 그날 사울은 사무엘과 함께 먹었다. 그들은 산당에서 내려와 성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사무엘과 사울은 하룻밤 잤다.

26-27 다음날 아침, 사무엘이 사울을 깨웠다. 사무엘은 사울을 배웅하며 성읍 끝에 이르렀을 때 사무엘은 사울에게 종을 먼저 보내라고 말했다. 종이 한참 앞서서 가니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겠으니 잠시 서 있으라고 말했다.

//저자는 사울과 종이 사무엘을 찾아간 것을 주님께서 사울을 사무엘에게 보내신 것이라고 분명히 한다. 사울과 종이 사무엘을 찾아간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였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는 이유는 주의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사로 세워야 마땅한데, 백성의 요구대로 왕으로 세우신다. //사울은 이미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나? 그럼에도 겸손했나?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자는 것으로 사울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대치를 끌어 올려주었다. 사사이자 선견자인 사무엘과 함께 함이 사울에게는 큰 경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람의 기대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다.  사무엘이 암나귀를 이미 찾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사울이 선견자에 물어볼 것은 암나귀의 행방이 아니었다. 아마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겪는 고난과, 사람들의 기대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잠포지움을 마치고 떠나는 사울에게 사무엘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사무엘상 9:1-14 읽기

1-2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고 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었다. 기스의 아버지는 아비엘이고 할아버지는 스로이고 그 위로는 베고랏이고 그 위로는 아비아이다. 기스에게는 사울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사울은 잘 생겼으며 키도 보통 사람들 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다.

3-10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기르던 암나귀 몇마리를 잃었다. 기스는 아들 사울에게 종 하나를 데리고 가서 암나귀를 찾아보라고 말했다. 사울은 종을 데리고 에브라임 산간지역과 살리사 지방으로 두루 다니며 암나귀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사알림, 베냐민 지역까지 가보았으나 거기에도 없었다. 사울과 종이 숩 지방에 들어섰을 때, 사울은 종에게 ”아버지께서 암나귀들 보다 우리들을  더 걱정하시겠다” 하며 말했다. 종은 사울에게 “이 성읍에는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한 분 계시는데,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틀림없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분께 가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그분이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려 줄지도 모릅니다.” 하고 말했다. 사울은 종에게 한번 가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분께 가져갈 예물을 찾았다. 종은 은전 한 푼이 있다며, 이것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리자고 말했다. (선견자와 예언자와 선지자는 같다.) 사울은 종의 생각을 좋게 여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갔다.

11-14 성읍에 도착한 사울과 종은 물길러 내려오는 처녀들을 만나 선견자께서 성읍에 계신지 물었다. 처녀들은 계신다고 대답했다. 서둘러 가면 따라가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 사람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날이기 때문에 그분이 방금 성읍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니 성읍으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들이 성읍안으로 들어가니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맞은 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키크고 잘생긴 사울이 등장한다. (잘 생겼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며, 한편 키가 컸다는 것은 교만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거기다 사울은 유력한 사람의 아들이었다. (본문의 유력하다는 단어는 룻기서 보아스를 수식하던 바로 그 단어다.) 더군다나 아버지 말을 잘 듣는 효자였다. 로맨스 드라마에 나오는 키크고 잘생긴 회장님 아들에다 착하기까지 한 주인공이다. //엄친아면 뭐하랴?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을 몰랐으니 종보다 못하다. 예수께서는 유력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 반면 유력자들은 제멋에 살기가 쉽다. (룻기의 보아스는 예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사울은 아직 겸손하다. 종의 의견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져갈 예물도 챙기려는 마음이 있었다. 사실 어린(청년) 사울은 종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은전 한푼도 종이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울의 아버지가 사울의 후견인이나 청지기로 세운 종이었을 것이다. (갈4) ////하나님은 종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이런 어린 (겸손한) 사울을 기대하셨을 것이다. 나의 큰 키를 자랑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신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선한) 얼굴과 사람이 보기에 좋은(교만/키 큼)이 공존하는 사울이다. 사무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후에 다윗을 세울 때에도 사무엘이 용모와 키를 보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사무엘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셨다.(삼상16) 

사무엘상 8:1-22 읽기

1-3 사무엘이 늙었다. 사무엘은 자기의 아들들, 곧 요엘, 아비야다,를 브엘세바에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일하도록 세웠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했다.

4-9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장로들이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갔다. 장로들은 사무엘은 늙었고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의 길을 따라 살지 않으니,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사무엘에게 말했다. 사무엘은 장로들의 말에 마음이 상했지만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백성이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주님을 버렸다고 하신다. 백성이 주님을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주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고, 지금 사무엘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백성의 말을 들어주되 엄히 경고하여 (세상) 왕의 권한이 무엇인지 알려주라고 말씀하셨다.

10-18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왕의 권한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은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군인으로 삼을 것입니다. 천부장 오십부장과 같은 장교로 임명하기 하겠지만 왕의 밭을 갈고 추수하고 병기를 만드는 일도 시킬 것입니다. 왕은 당신들의 딸들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입니다. 왕은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추수한 것의 십분의 일을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당신들의 남종과 여종을 데려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입니다. 당신들의 양 떼 가운데서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갈 것입니다. 결국 당신들은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때야 당신들이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게 되겠지만, 주님께서는 당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9-22 사무엘이 왕의 권한을 말해주었지만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거듭 말했다. 사무엘은 백성의 말을 들은대로 주님께 아뢨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백성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들에게 왕을 세워주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단) 각자 자기 성읍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이라고 엘리의 두 아들에 비해 낫다고 할 수 없다.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과 달리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했다. 사무엘은 돈 대신 주님께 마음을 쏟아 바르게 재판을 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쳐도, 사무엘이 자녀교육에 실패한 것은 많이 아쉽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구하는 표면적 이유로 사사로 세워진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무엘의 길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무엘의 길은 무엇인가? 한구절로 정리한다면 3장 10절 하반절이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곧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위해, 곧 주님을 순종할 왕으로 모시지 않기 위해 왕을 구한다. //주님은 사무엘을 통해 세상 왕의 권한을 말씀하신다. 한마디로 세상 왕은 백성을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 부려먹는 존재라고 하신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이 이미 세상 왕을 세우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고 말씀하셨다. ////나라의 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왕노릇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골목대장놀이부터 사회에서도 자기 영역에서는 왕노릇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따라야 할 주님의 길은 섬김의 길이다.

사무엘상 7:3-17 읽기

3-4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여러분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시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이말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과 아스다롯 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만을 섬겼다.

5-6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 미스바로 모이게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다가 물을 제물로 삼아 주님 앞에 쏟아붓고, 그날 종일 금식했다. 그리고 주님을 거역하며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다. 미스바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던 곳이다.

7-11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에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치려고 올라왔다. 이스라엘 자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에게 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 주시도록 쉬지 말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간청했다. 사무엘이 주님께 온전한 번제물을 바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은 사무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고 있을 때 블레셋이 공격해 왔으나 주님께서 큰 천둥 소리를 일으켜 블레셋 사람을 당황하게 하셨고,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패했다. 이스라엘 사람이 미스바에서 벳갈까지 블레셋 사람을 뒤쫓으면서 무찔렀다.

12-14 사무엘이 돌 하나를 가져다가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하고 말하면서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시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의 손이 블레셋 사람을 막아주셨다. 블레셋이 빼앗가 갔던 에그론과 가드 사이에 있던 성읍들도 이스라엘에 되돌아 왔다. 이스라엘은 또 아모리 사람과도 평화롭게 지냈다.

15-17 사무엘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는 해마다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 지역을 돌면서 이스라엘 사람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와서 거기에서도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하였다. 사무엘은 라마에 주님의 제단을 쌓았다.

//주님은 언약궤가 아니라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신다. 언약궤만 바라보던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사무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스라엘 자손간의 분쟁을 중재하던 미스바에서 사무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분쟁?을 중재했다.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안수/정화수를 떠놓고 금식하며, 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죄를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에 블레셋이 공격을 해왔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 블레셋에게 싸움을 걸어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번에는 언약궤가 아니라 사무엘을 통해 주님께 도움을 구했다. 주님께서는 사무엘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물리쳤다. 사무엘은 주님이 도와주셔서 이겼다고 에벤에셀 돌기둥을 세웠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블레셋은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았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사람과도 평화롭게 지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 지역을 돌면서 이스라엘 사람 사이의 분쟁을 중재했다.) 사무엘은 사사로 활동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세상은 교회를 공격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나라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세상과 평화롭게 지낸다. ////주님은 말씀을 듣는 성도를 통해 일하신다. 주님은 말씀을 듣는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주님은 말씀을 듣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대사로 사용하신다. 

사무엘상 6:1-7:2

1-9 주님의 궤가 블레셋 지역에 일곱달이나 머물러 있었다. 블레세서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을 불러 놓고 궤를 돌려보낼 방법을 강구했다.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은 궤를 그냥 돌려보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궤의 주인인 신에게 속건제물을 바쳐야 병도 낫고 재앙도 거두신다고 말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 신(하나님)께 무슨 속건제물을 바쳐야 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블레셋 통치자들과 백성이 같은 재앙을 당했기 때문에, 블레셋 통치자들의 수대로 악성종양 형상으로 금상 다섯개를 만들고, 또 쥐모양의 금상 다섯개를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악성종양 모양과 땅을 해치는 쥐모양의 금상을 만들어 바치고 이스라엘의 신(하나님)께 예를 차리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신이 혹시 블레셋 사람과, 블레셋 신과, 블레셋 땅에 내리치시던 손을 거두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집트 백성과 이집트 왕 바로처럼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고집을 피우다가 재앙은 재앙대로 다 받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가게 한, 이집트를 따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들은 수레를 새로 만들고,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어미 소 두마리를 끌어다 그 수레에 메우고, 송아지들은 어미 소에서 떼어서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주님의 궤를 그 수레에 싣고, 속건제물을 궤 곁에 두고, 어미 소 두마리가 가고 싶은 대로 수레를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소가 수레를 끌고 궤가 본래 있던 벳세메스로 올라가면 블레셋에 내린 모든 재앙을 내리신 분이 이스라엘의 신이 맞고, 소가 다른 곳으로 가면 이스라엘의 신이 블레셋을 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재앙을 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0-12 블레셋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암소들은 수레를 끌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벳세메스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갔다. 블레셋 통치자들이 벳세메스의 경계까지 따라갓다. 

13-16 벳세메스 사람들은 밀을 추수하고 있다가 궤를 보고 기뻐했다. 수레는 벳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와서 멈췄다. 그들은 그곳에 있는 큰 바위를 제단 삼고, 나무 수레를 장작으로 삼고, 암소 두마리를 번제물로 삼아 주님께 바쳤다. 레위 사람들이 수레에서 주님의 궤와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큰 바위 제단에 올려 놓았다. 뒤 따라 왔던 블레셋 다섯 통치자들도 이것을 다 보고 나서 그날로 에그론으로 돌아갔다.

17-18 블레셋 사람이 주님께 속건제물로 바친 금덩이 다섯은 각각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글론을 위한 것이었다. 쥐모양 금상도 이들이 다스리던 다섯 성읍을 위한 것이었다. 벳세메스 큰 바위 제단은 아직도 거기에 그대로 있다.

19-7:1 벳세메스 사람들이 주님의 궤 속을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벳세메스 백성가운데서 (오만) 칠십명을 쳐서 죽이셨다. 백성은 슬피 울었다. 벳세메스 사람들은 이렇게 거룩하신 주하나님을 누가 감히 모실 수 있겠느냐며, 주님의 궤를 기럇여아림 주민들에게 전령을 보내 블레셋 사람들이 돌려보내온 궤를 가져 가라고 말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주님의 궤를 옮겨, 언덕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았다. 그리고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세워서 주님의 궤를 지키게 했다.

7:2 이렇게 주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에 약 이십년 동안 있었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의 온 족속은 주님을 사모(슬퍼하며 찾다) 했다.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낼 방법을 강구하느라 일곱달이나 지났다. 결국 블레셋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의 도움을 구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행하신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제사법도 연구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믿음이 없어도, 종교적 열심만으로)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내는 데 성공한다. 궤를 운반한 수레는 제사에 쓸 땔감으로 사용되었고 수레를 끌고간 암소 두마리는 번제물로, 궤와 함께 온 금덩이들은 속건제물로 드려졌다. //하나님의 궤를 돌려받고 제사를 드렸다고 ‘샬롬’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주님의 궤 속을 (함부로)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벳세메스 백성 칠십 명을 죽이셨다. (작은 마을에서) 오만 칠십명은 과하다. 그래서 (오만) 칠십 명이라고 기록한다. 이스라엘 성읍 벳세메스에서도 하나님의 궤에 대한 기쁨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결국 하나님의 궤도, 궤가 있는 땅도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하나님의 궤에 대한 마음이다. 벳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기럇여아림 마을로 보내기로 했다. 기럇여아림에서는 사람들이 와서 궤를 가져갔다. 원치 않는 궤를 넘겨 받은 것이 아니라  와서 친히 옮겨갔다. 모셔갔다. 그리고 벳세메스에서의 불상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두고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세워 궤를 지키게 했다. //그러나 20년동안 주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개역개정, 새번역은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온 족속은 주님을 사모했다고 번역하는데, 현대인의 성경과  NIV는 ‘사모’했다를 ‘슬퍼하며 주님을 찾았다’ 라고 번역한다. 결국 짝사랑이었다. 곧 궤를 모셔왔어도, 주의 백성이 주님을 찾았어도 하나님께서 이십년 동안 여전히 침묵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약궤를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이방의 목석의 신들을 섬기듯 대해서는 안 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