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5:1-12 읽기

1-5 블레셋은 탈취한 하나님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가져갔다. 블레셋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전으로 가져가 다곤 신상 곁에 놓았다. 그 다음날 아스돗 사람들이 아침 일찍 다곤 신전에 가 보니, 다곤 신상이 주님의 (야웨의) 궤 앞에 엎어져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들은 다곤 신상은 제자리에 다시 세워놓았다. 그 다음날도 다곤 신상이 주님의 궤 앞에 엎어져서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다곤의 머리와 두 팔목이 부러져서 문지방 위에 나 뒹굴었고 다곤은 몸통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다곤의 제사장들과 다곤 신전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은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들어갈 때 문지방 위를 밟지 않고 넘어서 들어간다.

6-12 주님께서 아스돗 사람들을 악성 종양 재앙으로 무섭게 내리치셨다. 아스돗 사람들은 망했다. 아스돗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들의 신 다곤을 무섭게 내리쳤다고 생각해서, 이스라엘의 신의 궤를 자신들이 있는 곳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블레셋 통치자들에게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블레셋 통치자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겼다. 블레셋이 그 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옮긴 뒤에는 주님께서 가드 사람들에게 악성 종양이 생기게 하셨다. 블레셋 통치자들은 궤를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기기로 하자, 에그론 사람들은 아스돗 사람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에그론에게 가져와서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울부짖었다. 결국 블레셋 통치자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윈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궤가 있는 곳들을 무섭게 내리치셨기 때문에 그 성읍 사람들은 죽을 지경에 이르러 큰 혼란에 빠졌다. 죽지 않은 사람들은 악성 종양으로 고통스러워 지르는 비명소리가 하늘에 사무쳤다.

//오늘 사건의 주어는 하나님(신)의 궤가 아니라 주님이시다. 블레셋이 언약궤로 말미암아 재앙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을 자기들의 신들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의 신전에 가져간 것은 다곤 신에게 바치는 전리품일 수도 있겠으나, 자신들이 이미 섬기는 다곤에, 전쟁의 신으로 두려워 했던 이스라엘의 신을 더하길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신을 모으는 블레셋에 주님은 재앙의 신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블레셋은 언약궤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재앙을 피하려고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블레셋은 언약궤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기로 결정하고 자신들은 알지도 못하는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궤가 정해진 곳에 있기를 원하신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주의 백성이 전적으로 주님 앞에 굴복하는 곳이다. 나의 필요를 따라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의 백성이라도 주님의 궤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옮기면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이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신 곳에 있어야 한다. ////주님은 성도의 마음 속에 성령으로 임재하신다. 주의 말씀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두 마음을 품으면 주님께서 떠나신다.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주께 아무것도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야고보는 교훈한다. 그래서 시인은 정결한 마음을 구하고, 정직한 영 새롭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사무엘상 4:12-22 읽기

12-18 베냐민 사람 한 명이 전장에서 살아나와 그날로 실로에 돌아왔다. 그는 (패전으로) 슬픈 나머지 옷을찢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 썼다. 그사람이 왔을 때, 엘리는 길가 의자에 앉아서 길을 내다보면서, 마음 속으로는 하나님의 궤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패전의 소식을 전하니 온 성읍이 두려워하며 슬피 울부짖었다. (눈이 먼) 엘리가 무슨 소린지 물었다. 그 사람은 엘리에게 달려와 패전의 소식을 전했다. 아흔 여덟의 엘리는 이미 앞을 거의 못보는 노인이었다. 그 사람은 엘리에게 자신은 전장에서 도망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에게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전했고, 전장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다고 말했다. 엘리는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에, 앉아 있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늙은 데다 몸이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엘리는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19-22 그 때에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출산이 가까왔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고 시아버지와 남편도 죽었다는 소식에 갑자기 진통이 일어나 해산을 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을 낳고 거의 죽게 되었다. 해산을 돕던 여인들이 아들을 낳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자, 산모는 침묵하다가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이라고 지었다.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 하고 말했다. 하나님의 궤도 빼앗기고 시아버지도 남편도 죽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고 말했다고 재차 강조한다.

//하나님이 궤. 엘리는 하나님의 궤를 걱정하고 있었다. 엘리는 두 아들이 죽었다는 말보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 뒤로 넘어져 죽었다.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도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 조산을 했다. 그녀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 곧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 라는 뜻으로 지었는데,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것보다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반복해서 언급한다. //저자가 물고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궤다. 하나님의 궤는 우상신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요, 언약은 사람이 새긴 우상과 달리 하나님께서 새기신 것이요,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 시작했는데….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대신 하나님의 궤만 바랐다. 눈만 완전히 멀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도 닫혔다. 엘리는 만군의 주님께 귀를 기울이는 대신 패잔병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엘리의 며느리도 하나님의 궤 때문에 그동안 배부르게 살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사 시아버지가 죽었어도 하나님의 궤가 있으면 남편이 죽어도 대대로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시집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사 시아버지도 제사장의 대를 이을 남편도 죽은 마당에,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겼으니 망했다고 생각했다. 엘리도 며느리도 하나님을 몰랐다. 아들을 낳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여인들도 하나님을 몰랐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지 않는 엘리의 세대는 끝났다. 저자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무엘의 시대를 기대하게 한다. 한국교회는 어떤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화려한 교회당과 숫적 번영을 통해 쌓아 둔 부만 의지한다면 늙은 데다 몸이 무거운 엘리의 운명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젊은 세대도 교회에서 영광이 떠났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않는다. 십자가를 자신의 부를 쌓은데 사용해 왔으니 물려줄 재물은 있어도 물려줄 신앙이 있을리 없다.ㅠㅠ 어쩌면 한국교회도 폭삭 망해야 주님의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어린 세대에 말씀하실 때, 늙고 무거운 몸을 가진 어른 세대가 잘못된 해석을 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지켜주십시오. 

사무엘 4:1-11 읽기

1a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였다.

1b-4 그 무렵,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아벡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맞서 싸우려고 에벤에셀에 진을 쳤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졌다. 그 싸움에서 이스라엘 사람은 사천 명 정도 전사했다. 이스라엘 패전병이 돌아오자 장로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지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서로 물었다. 그리고 실로에 가서 주님의 언약궤를 가져오면 원수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실로로 사람을 보내 그룹사이에 있는 만국의 주님의 언약궤를 메고 왔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함께 왔다.

5-11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언약궤가 진으로 들어올 때, 땅이 진동할 정도로 크게 환호성을 올렸다. 환호소리에 블레셋 사람들도 이스라엘 진에 주님의 궤가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블레셋 사람은 이스라엘 진에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이 들어갔다는 소식에 자신들에게 화가 미쳤다며 두려워하며 수군거렸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온갖 재앙으로 이집트 사람을 쳐서 죽게 하신 신들이라고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블레셋 사람들을 더욱 분투하게 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대장부답게 힘을 내었다. 그렇지 않으면 히브리 사람이 자신들이 종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종이 될 것이니 차라리 대장부처럼 나가서 싸우겠다고 결의했다. 이런 블레셋 사람들을 이스라엘은 감당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또 다시) 져서 제각기 자기 장막으로 달아났다. 이스라엘은 보명 삼만 명이 죽을 정도로 크게 졌다. 하나님의 궤도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이 때 전사했다.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였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이스라엘 장로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무엘을 찾지 않았다. 대신 주님의 언약궤를 찾았다. 사무엘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를 상징한다면, 언약궤는 죽은 말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은 언약궤를 부적처럼 사용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장에 도착했다. 다시말해 주님의 언약궤를 부적처럼 사용하려는 것은 홉니와 비느하스로부터 나온 생각이었을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신들(하나님)의 명성을 알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신)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신)께 의지하지 않고 언약궤를 모셔왔다는 소리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신)도 블레셋이 섬기는 신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만든 우상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성에 두려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사항전의 마음으로 분투했다. 결국 블레셋이 이겼다. 블레셋은 하나님의 궤도 빼앗아 버렸다. 주님의 언약궤를 부적처럼 사용하려 했던 홉니와 비느하스도 이때 전사했다. 언약궤는 승전을 위한 부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돌판에다 문자로 새긴 율법을 귀하게 여기듯,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했다. 사무엘이 말을 하도록 기다려야 했다. 성도는 주님의 말씀이 거하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 오늘도 내 마음속에 간직한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다.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였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성도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무엘상 3:1-21 읽기

1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2-9 어느날 밤, 이미 눈이 침침한 엘리가 잠이 들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환하게 밝혀져 있을 때, 주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고서 곧장 엘리에게로 달려갔다. 사무엘은 엘리가 부른줄 알았다. 엘리는 자신은 사무엘을 부르지 않았으니 도로 가서 누우라고 말했다. 사무엘은 다시 가서 누웠다.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셨다. 사무엘은 다시 엘리에게 갔다. 엘리는 사무엘을 다시 돌려보냈다. 이때가지 사무엘은 주님을 알지 못했고,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주님께서 사무엘을 세번째 부르셨다. 사무엘은 다시 엘리에게 갔고, 그제서야 엘리는 주님께서 소년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가서 누웠다가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라고 말했다. 사무엘이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10-14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찾아와 조금 전처럼 사무엘을 부르셨다. 사무엘은 엘리가 가르쳐준대로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일을 말씀하시겠다고 말했다. 듣는 사람의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라고 하셨다. [때가 오면 내가 엘리의 집을 두고 말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겠다.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 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자식들의 죄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엘리에게 이미 알려줬다. 그러므로 엘리의 집의 죄악은 영영 씻지 못할 것이다.]

15-18 사무엘은 아침까지 누웠다가 주님의 집 문들을 열었다. 사무엘은 자기가 환상으로 보고 들은 것을 엘리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했다. 엘리가 사무엘의 불러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물었다. 엘리는 사무엘에게 숨기지 말고 말하라고 시켰다. 사무엘은 엘리에게 하나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엘리는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하고 말했다.

19-21 사무엘이 자랄 때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주님께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리하여온 이스라엘은 사무에이 주님께서 세우신 예언자임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실로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다.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반증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쳐야 할 제사장이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엘리의 눈은 이미 멀었다고 기록한다. 말씀을 들어도 말씀을 깨닫지 못함을 암시한다. 그래도 삼세번만에 주님이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가르쳐 주었다. //사무엘은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곳에서 잠을 잔다. 빛가운데 있어도 주님을 아직 몰랐다. 주님을 몰랐다는 것을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이 없어다고 부연 설명한다. 주변이 밝은 것보다 눈이 밝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셨다. 엘리는 눈이 나빠 온 몸이 어두웠던 것이고, 주님은 사무엘의 눈을 밝게 하시려고 그를 부르신 것이다.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셔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와 전한 말씀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은 엘리집안에 대한 심판을 엘리에게 이미 알려주었다고까지 말씀하신다. 결국 주님이 사무엘을 부르신 것은 엘리가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마침내 엘리는 사무엘을 통해 주님이 뜻을 반복해서 듣고야 주님께서 주님의 뜻대로 하실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렇듯 사무엘이 들은 첫번째 주님의 말씀은 심판이었다.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제사장은 듣는 사람의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좋은게 좋다는 평화만 전할 수 없다. 어린 사무엘은 심판의 말씀을, 그것도 자기를 가르치는 엘리에게 심판을 선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의 첫 발을 딛었다. //사무엘이 자랄 때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육신만 자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선지자로서의 경력도 자랐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무엘이 있으니, 주님은 사무엘에게 (자주)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 고집을 간구하기 위해 입을 자꾸 여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귀를 닫는 것이다. 설교 말씀의 홍수에도, 신앙서적이 범람해도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으니 주님의 말씀은 여전히 희귀하다. 

사무엘상 2:11-36 읽기

22-26 엘리는 매우 늙었다. 엘리는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저지를 온갖 잘못을 상세히 들었고, 심지어 두 아들들이 회막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엘리는 그들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타일렀다. 엘리는 이런 추문을 듣게 되다니 두렵다고 말했다. 사람끼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중재해 주시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아무도 변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가 꾸짖어도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홉니와 비느하스를 주님께서는 이미 죽이려고 하셨다. 한편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27-36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주가 말한다. 나는 네 조상이 이집트에 있을 때, 분명하게 그들에게 나타내 주었다.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네 조상 아론을 선택해서 나의 제사장으로 삼아, 나의 제단에 올라와 분향하고, 에봇을 입고 내 앞에 나아와 내 뜻을 듣도록 했다. 또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불살라 바치는 제물을 너희 몫으로 차지할 권리를 네 조상 때부터 주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처소에서 나에게 바치라고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멸시하느냐? 어찌하여 너는 나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에게 바친 모든 제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다가  스스로 살찌도록 하느냐?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지난 날 나는 너의 집과 너의 조상의 집이 제사장 가문이 되어 언제까지나 나를 섬길 것이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다. 이제는 내가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만 존중하고, 나를 경멸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네 자손과 네 족속의 자손의 대를 끊어서 너의 집에서 오래 살아 나이를 많이 먹는 노인이 없게 할 날이 올것이다. 너는 고통을 받으면서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에게 베푸는 복을 시샘하며 바라볼 것이다. 네 가문에서는 어느 누구도 오래 살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네 자손 가운데서 하나만은 끊어 버리지 않고 살려 둘 것이다. 그가 제사장이 되어 나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맹인이 되고 희망을 다 잃고, 그의 자손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변사를 당할 것이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한 날에 죽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말한 모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나는 나의 마음과 나의 생각을 따라서 행동하는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겠다. 내가 그에게 자손을 주고 그들이 언제나 내가 기름부어 세운 왕 앞에서 제사장 일을 보게 하겠다. 그 때에 너의 집에서 살아 남는 자들은 그에게 제사장직을 구걸할 것이다.]

//엘리는 늙기까지 “너의 자식을 훈계하여라. 그러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고,  너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 줄 것이다” 라는 지혜가 (잠29:17) 없었다. 매우 늙어서야  두 아들을 꾸짖었으나 이미 늦었다. 백성과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장이었으면서도, 엘리는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아무도 변호할 수 없다는 것을 매우 늙어서야 깨닫고 아들들을 꾸짖었으나, 홉니와 비느하스는 끝까지 아버지 엘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를 찾아와 말했다. 엘리가 두 아들을 어려서부터 훈계하지 못했던 것을, 엘리가 하나님보다 두 아들들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하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의 예로 작은(가난한)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은 (엘리도 포함해서) 스스로 살찌는데 바빴다. 엘리는 두 아들들에게 주어야 할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주님은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서 행동하는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일차적으로는 커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사무엘이다. 궁극적으로는 바로 우리 주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 순종하신 충실한 제사장이 되셨다.  영원한 대제사상이신 우리 주 예수는 성도를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서 행동하는 충실한 제사장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셨다. ///우리 아이들이 육신을 살찌게 하는 것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아이들이 영을 정결하게 하도록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게 하소서. 저와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은 것, 곧 주님의 영, 말씀에 순종하는 영의 도움으로, 매일 주시는 말씀을 깨달아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