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9:38-52 읽기

38-45 그러나 주님은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왕, 다윗에게도 노하셨다. 그를 물리치시고 내버리신다. 언약을 파기하시고 다윗의 왕관을 땅에 내던져 욕되게 하셨다. 주님께서 성벽을 허무시고 요새를 폐허로 만드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약탈당하고 이웃들에게는 수치거리가 되었다. 대신 대적들의 오른손을 치켜 올려서 원수들이 기뻐 날뛰게 하셨다. 주님께서 전쟁터에서 더 이상 그를 돕지 않으셨다. 그의 영광을 끝나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땅바닥에 내던지셨다. 주님은 그의 젊은 날을 줄이시고 그를 수치로 덮으셨다.

46-48 시인은 언제까지 주님이 숨어 계시며,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를 불태우려고 하시는지 묻는다. 시인은 인생이 짧고 유한하며 허무한 존재로 창조 받았다고 노래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아무도 죽음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49-52 시인은 주님의 신실함에 호소한다. 다윗과 더불어 맹세하신 첫사랑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시인은 주의 백성이 뭇 민족으로부터 받은 치욕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한다. 원수들이 주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깔보며 가는 곳마다 주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모욕한다고 고발한다. 시인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주님을 노래한다. 아멘 아멘.

//시인은 주님과의 사랑도 항상 꽃길이 아니라고 노래한다. 짧고 유한한 인생길이 수치로 가득하자 시인은 주님의 첫사랑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한편 요한은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는 주님의 편지를 소개한다. 첫사랑, 첫행위를 회복하지 않은 성도라면 주님의 첫사랑을 언급할 수 없다. 짝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의 신실하심에 호소라려면 우리도 신실해야 한다. 시인이 치욕과 모욕중에도 주님을 영원히 찬양한다고 고백하는 힘은 주님이 변치않고 영원히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신실해야 한다. 

시편 89:19-37 읽기

시인은 환상가운데 주님께서 주님의 성도에게 하신 말씀을 전한다. 시인의 노래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은 주의 백성을 다스릴 용사를 선택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용사가 주의 종 다윗이다. 주님은 주의 종 다윗에게 주님의 거룩한 기름을 부으셨다. 주님이 다윗을 붙드시고 강하게 하신다. 그래서 원수들이 다윗을 이기지 못하고 악한 무리가 다윗을 괴롭히지 못한다. 오히려 주님이 다윗의 대적들을 격파하고 다윗을 미워하는 자들을 쳐부수신다. 주님은 다윗을 사랑하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신다. 그래서 다윗에게 승리를 안겨주신다. 이제 다윗이 바다와 강도 정복한다. 다윗은 주님을 아버지요 하나님이요 구원의 반석이라고 부른다. 주님도 다윗을 맏아들로 삼아 세상 왕들 가운데 가장 높은 왕으로 삼으신다. 주님은 다윗에게 신의를 영원토록 지켜 다윗과 맺은 언약을 성실히 지키신다. 다윗의 자손을 길이길이 이어주신다. 다윗의 왕위를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신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이 주님의 법을 버리고 주님의 규례를 따라서 살지 않고 주님의 율례를 깨뜨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주님은 다윗의 죄를 물어 채찍으로 치고 매질할 것이다. 그러나 다윗에게 약속한 주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주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주님의 약속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주님은 주님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셨으니 다윗을 속이지 않으신다. 다윗의 자손이 영원토록 이어지고 다윗의 왕위는 태양처럼, 달처럼, 구름 속에 있는 진실한 증인처럼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다윗은 그리스도 예수다. 다윗(그) 대신 ‘예수’를 넣고 읽어도 노래는 같다. 그리고 성도는 예수 안에서 다윗의 영광을 누린다. 궁극적으로 주님의 영광을 누린다. 

시편 89:1-18 읽기

시인은 영원히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길 원한다. 자자손손 자신이 노래한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길 원한다. 시인은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변치 않으며 신실하다고 노래한다. 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언약이다.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선택한 사람과 언약을 맺으신다. 다윗과도 언약을 맺으며 다윗과 다윗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세워 다윗의 왕위가 대대로 이어지게 하겠다고 맹세하셨다. 

시인은 하늘과 함께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노래하길 원한다. 거룩한 회중과 함께 주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하길 원한다. 하늘 위에서도, 신들 가운데서도 주님과 같으신 분은 없다. 하늘에서도 하나님만 경외받으실 분이시다. 주님을 모시는 모든 자들이 경외할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신실하신 대장이시다. 주님은 소용돌이 치는 바다도 다스리신다. 파도도 잠잠케 하신다. 주님은 라합(이집트, 자랑하는 자들)을 격파하시고 죽이시고, 원수들을 흩으셨다. 

하늘도 땅도 모두 주님의 것이다. 우주만물을 주님께서 창조하셨다. 산들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한다. 주님의 팔에 능력이 있고 주님의 손에 힘이 있다. 주님은 오른손을 높이 드셨다. 정의와 공정, 사랑과 신실로 다스리신다. 정의와 공정, 사랑과 신실로 다스림을 받는 주의 백성은 복이 있다. 주님의 빛나는 얼굴에서 나오는 은총으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은 축제의 함성을 외치며 주의 의로우심을 기뻐할 것이다. 주님께서 주의 백성의 영광스러운 힘이다. 주님의 사랑 덕분에 주의 백성은 승리의 나팔을 분다. 주님은 성도의 방패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의 왕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 나의 노래가 시인의 노래처럼 자녀들에게 자자손손 전해질 수 있을까? 내가 정의와 공정, 사랑과 신실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주의 언약 안에 거하는 수 밖에 없다. 나의 노래는 잊혀져도 주님의 언약은 영원하고 변치 않으며 신실하니깐. 나의 노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언약,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면 된다.

시편 88:1-18 읽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밤낮으로 내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기도합니다). 내 기도와 울부짖음을 귀를 기울여 들어주소서. 주님 나는 고난에 휩싸여, 내 목숨은 경각에 달했습니다. 나는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과 다름 없습니다. 기력을 다 잃은 사람과 같습니다. 시체들 가운데 버려진 살해되어 무덤에 누워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나는 주님의 기억에서 사라진 자요 주님의 손에서 끊어진 자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덩이의 밑바닥, 칠흙 같이 어두운 곳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주님의 진노가 나를 짓누릅니다. 주님의 파도로 나를 덮쳤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친한 친구들마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나의 친구들이 역겹게 나를 봅니다. 나는 갇혀서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고통으로 눈마저 흐려졌습니다. 주님 나는 온종일 주님께 부르짖으며,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주님, 나의 혼백이 일어나서 주님을 찬양하도록, 주님께서는 죽은 나에게 기적을 베푸시겠습니까? 무덤에서 주님의 사랑을, 죽은 자의 세계에서 주님의 성실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흑암 속에서 주님의 기적을, 망각의 땅에서 주님의 정의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주님, 내가 첫새벽부터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고, 나에게 주님의 얼굴을 감추십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고통을 겪었습니다. 지금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왔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형벌이 무서워 내 기력이 다 쇠잔해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진노가 나를 삼켰으며, 주님의 무서운 공격이 나를 파멸시켰습니다. 무서움이 홍수처럼 사방에서 나를 에워쌌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으셨습니다.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

//밤낮으로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시인은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 하고 노래를 마무리한다. 개역개정은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하고 번역한다. 두 번역 모두 더 이상 나에게는 (도움을 구할)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시인은 밤낮으로 주님만 찾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을, 친구가 없다고 노래한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성도에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인과 달리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시인이 절망가운데 불렀던 노래를,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소망가운데 부르게 되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도, 허물과 죄로 죽었어도, 어둠에 갇혔어도, 우리에겐 어둠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라는 친구가 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거하시는 주님이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임마누엘!

시편 87:1-7 읽기

1-3 그 터전이 거룩한 산 위에 있다. 주님은 시온의 문들을 야곱의 어느 처소보다 더욱 사랑하신다. 너 하나님의 도성아, 너는 영광스럽다. //거룩산 산 위의 터전이 시온이고, 주의 백성이  시온으로 들어가는 문들이야 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이다. 성도가 들어가는 곳이 곧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시온의 문이 되어야 한다.

4-6 시온에 속한 사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대로 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그래서 시인은 라합(이집트?)과 바빌로니아, 블레셋과 에티오피아에서도 시온에 들어갈 사람이 있다고 노래한다. 가장 높으신 분, 하나님이 세우신 시온에 들어갈 나라와 민족에 차별이 없다. 주님께서 시온에 들어갈 사람을 계수하시며, 친히 등록하실 것이다. 

7 시온에 들어가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은 “나의 모든 근원이 주님 안에 있다” 하고 말한다. //생명의 근원은 주님이다. 시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성도는 나라와 민족의 차별없이 모두 하나님으로 부터 난 사람들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4/29/

//히브리서에서 묵상한 하나님의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