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밤낮으로 내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기도합니다). 내 기도와 울부짖음을 귀를 기울여 들어주소서. 주님 나는 고난에 휩싸여, 내 목숨은 경각에 달했습니다. 나는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과 다름 없습니다. 기력을 다 잃은 사람과 같습니다. 시체들 가운데 버려진 살해되어 무덤에 누워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나는 주님의 기억에서 사라진 자요 주님의 손에서 끊어진 자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덩이의 밑바닥, 칠흙 같이 어두운 곳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주님의 진노가 나를 짓누릅니다. 주님의 파도로 나를 덮쳤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친한 친구들마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나의 친구들이 역겹게 나를 봅니다. 나는 갇혀서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고통으로 눈마저 흐려졌습니다. 주님 나는 온종일 주님께 부르짖으며,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주님, 나의 혼백이 일어나서 주님을 찬양하도록, 주님께서는 죽은 나에게 기적을 베푸시겠습니까? 무덤에서 주님의 사랑을, 죽은 자의 세계에서 주님의 성실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흑암 속에서 주님의 기적을, 망각의 땅에서 주님의 정의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주님, 내가 첫새벽부터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고, 나에게 주님의 얼굴을 감추십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고통을 겪었습니다. 지금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왔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형벌이 무서워 내 기력이 다 쇠잔해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진노가 나를 삼켰으며, 주님의 무서운 공격이 나를 파멸시켰습니다. 무서움이 홍수처럼 사방에서 나를 에워쌌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으셨습니다.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
//밤낮으로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시인은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 하고 노래를 마무리한다. 개역개정은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하고 번역한다. 두 번역 모두 더 이상 나에게는 (도움을 구할)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시인은 밤낮으로 주님만 찾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을, 친구가 없다고 노래한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성도에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인과 달리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시인이 절망가운데 불렀던 노래를,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소망가운데 부르게 되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도, 허물과 죄로 죽었어도, 어둠에 갇혔어도, 우리에겐 어둠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라는 친구가 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거하시는 주님이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