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5 그러나 주님은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왕, 다윗에게도 노하셨다. 그를 물리치시고 내버리신다. 언약을 파기하시고 다윗의 왕관을 땅에 내던져 욕되게 하셨다. 주님께서 성벽을 허무시고 요새를 폐허로 만드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약탈당하고 이웃들에게는 수치거리가 되었다. 대신 대적들의 오른손을 치켜 올려서 원수들이 기뻐 날뛰게 하셨다. 주님께서 전쟁터에서 더 이상 그를 돕지 않으셨다. 그의 영광을 끝나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땅바닥에 내던지셨다. 주님은 그의 젊은 날을 줄이시고 그를 수치로 덮으셨다.
46-48 시인은 언제까지 주님이 숨어 계시며,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를 불태우려고 하시는지 묻는다. 시인은 인생이 짧고 유한하며 허무한 존재로 창조 받았다고 노래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아무도 죽음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49-52 시인은 주님의 신실함에 호소한다. 다윗과 더불어 맹세하신 첫사랑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시인은 주의 백성이 뭇 민족으로부터 받은 치욕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한다. 원수들이 주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깔보며 가는 곳마다 주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모욕한다고 고발한다. 시인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주님을 노래한다. 아멘 아멘.
//시인은 주님과의 사랑도 항상 꽃길이 아니라고 노래한다. 짧고 유한한 인생길이 수치로 가득하자 시인은 주님의 첫사랑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한편 요한은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는 주님의 편지를 소개한다. 첫사랑, 첫행위를 회복하지 않은 성도라면 주님의 첫사랑을 언급할 수 없다. 짝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의 신실하심에 호소라려면 우리도 신실해야 한다. 시인이 치욕과 모욕중에도 주님을 영원히 찬양한다고 고백하는 힘은 주님이 변치않고 영원히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신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