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21-29

마태복음 7:21-29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에 도전하는 것인가? 아니다. 다른 곳의 표현을 종합하면 바울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를 구주로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도 성령이 도우심이 절대적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한다고 해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유익을 위해 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께서는 심지어 이런 자들을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고 경고하신다. 따라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순종)하는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슬기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어리석은 사람이다. 비가 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닥치면 모래 위에 세운 집은 크게 무너진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기를 마치니 무리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의 가르침은 율법학자들의 가르침과 달리 권위가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저자특강이다. 율법을 저자의 의도대로 사랑으로 완성하셨다. 문자 놀음을 하는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다를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섬기는(to serve) 것과 종이 되는 (to be a slave) 것의 차이를 말했다. 섬기는 것에는 여전히 나의 자아가 남아 있다고 했다. 주어가 ‘나’다. 반면 종이 되는 것은 나의 자아가 남아 있을 곳이 없다. 말씀을 듣고서 그대로 행하는 것은 후자다.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이 땅의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의 종이 되셨다. 철두철미하게 아버지이 뜻대로 행하셨다. 예수께서 자아를 (하나님 되심을) 죽이셨으나,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를 성자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히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리에 앉는 길도 나의 자아를 죽이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의 많은 가르침을 다 헤아리면 좋겠지만, 하나 둘 이미 깨달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태목음 7:13-20

마태목음 7:13-20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해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비좁아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다.
거짓 예언자들은 양의 탈을 쓰고 오는 굶주린 이리들이다. 거짓 예언자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열매를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듯이 나쁜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을리 없고 좋은 나무에 나쁜 열매가 맺을 수도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문이 좁은 문이라고 하신다. 그냥 좁은 문이 아니라 생명으로 이끄는 문이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그 이유를 멸망으로 이끄는 넓은 문, 넓은 길로 인도하는 거짓 예언자들 때문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거짓 예언자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열매를 봐야 한다. 나쁜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을리 없다고 하신다. 곧 좋은 나무에 달린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좋은 나무는 그리스도 예수다. 예수께서 친히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다. 그러니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께 달려 있는지 아닌지로 구별해야 한다. 포도를 걸어둔다고, 무화과를 달아둔다고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가 되지 않듯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안 된다. 그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삶을 봐야한다. ///크고 넓은 문은 거짓 선지자들이 만들어 놓은 문이다. 실상은 문이 아니라 문이 아닌 곳을 넘어가도 된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가르치신다. 따라서 예수님을 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거짓선지자들은 절도며 강도질 하는 자들이다. 말로는 주여 주여 부르지만 정작 저들 자신은 주님의 음성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저들이 주님의 음성을 알지 못하니 듣기는 들어도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양이 구원을 받고 꼴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요 10) 크고 넓은 문을 만들어 놓고 양들을 절도질하고 강도질 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강조하신다. 예수님의 말씀,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좋은 열매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좁은 문은 낙타가 지나가기 힘든 바늘 구멍일 수도 있다. 내 것을 가지고는 통과할 수 없는 문이다. 부자만 아니라, 내것을 가지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누구나 통과하기 힘든 문이다. 좁고 협착한 순종이라는 길의 끝자락에 있는 생명의 문이다. 나에게는 여전히 버려야 할 것이 많구나!

마태복음 7:1-12

마태복음 7:1-12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심판하는 것으로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반문하신다.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남의 눈 속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이 발로 거룩한 것과 진주를 짓밟고 되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찾으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얻고, 찾는 사람마다 찾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 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기 위해 구해야 하고 찾아야 하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 곧 사랑이다. 비판하지 말하야 할 이유도 우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비판을 받지 않고자) 함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심판자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심판자는 오직 주님이시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 받을 것이요’와 연결된 가르침이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거나 헤아린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비판(심판)하시고 우리를 헤아릴 것이다. 비판하는 자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도 외모로 판단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중심을 보지 못하고 외모만 보는 것 자체가 외식이라고 주님은 지적하신다. 외모를 잣대로 삼는 것을 저들 눈 속에 있는 들보라고 하신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고 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들보를 천부 하나님께서 빼 주셨다는 것을, 즉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형제의 티도 빼줄 수 있다. 형제를 용서할 수 있다. 외식하는 자들에게는 거룩한 것이 (의로운 행위, 울법) 도리어 상대방을 비판하고 헤아리는데 사용된다고 경고하신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천국백성의 삶은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하는 자 찾는 자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주어진다.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신 이유도 천국 백성의 삶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이 끊임없이 도와주셔야 가능하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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