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4

시편 104

1-18 시인은 영혼으로 주님을 찬송한다. 주님의 위대하심과, 주님의 권위와 위엄을 찬양한다. 주님은 빛을 옷으로 입으시고 하늘을 천막처럼 펼치신다. 물위에 누각의 들보를 놓으시고, 구름으로 병거를 삼고,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신다. 바람을 심부름꾼으로 삼으시고 번갯불을 시종으로 삼으신다.  주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주님은 자연만물도 주님께서 정하신 대로 다스리신다. 자연만물이 주님의 법칙에 순종한다. 대지도 주님께 만족한다. 주님이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주시며, 동물들도 돌보신다.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노래한다. 티끌 같은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부를 수 없는 노래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성령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한다. 

19-35 (시인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이어진다.) 주님은 해와 달을 통해 때를 알려 주시는 분.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에 따라 삼라만상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사람들도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해서 해가 저물 때까지 일을 한다. 주님은 무형적인 것만 아니라 주님의 지혜로 땅에 속한 모든 것을 만드시고 채우셨다. 바다의 크고 작은 물고기도, 바다 위를 오가는 배들이어야 볼 수 있는 리워야단도 주님이 지으셨다. 주님은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시며 때를 따라 먹여주시고 입혀주신다. 자연만물은 주님의 돌보심에 만족한다. 혹여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한다. 피조물의 생명을 거두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으로 창조하셨듯이 재창조도 주님의 영으로 이루어진다.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다. 주님은 주님이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천지만물은 창조주 주님을 경외한다. 시인은 이런 주님을 노래한다. 숨을 거두는 그때까지 하나님을 노래하길 원한다. 시인은 자신의 묵상을 주님께서 받아주시기를 노래한다. 주님의 품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길 원한다. 죄인도 없고 악인도 없는 세상에서 주님을 찬송하기를 원한다. 할렐루야!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의 일용할 양식도 채워주신다. 큰 톱니바퀴와 작은 톱니 바퀴들이 맞물려 있다. 마치 시계의 큰 바늘(시침)이 안 움직이시는 것 같지만, 긴 바늘(초침)을 보면 시계가 열심히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잠잠하시는 것 같지만, 피조물들을 보면 하나님의 손 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처럼 우리도 창조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시편 103

시편 103

1-14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

주님은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

주님은 나의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분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해 주시는 분

사랑과 자비로 단장해 주시는 분

평생 좋은 것으로 흡족하게 채워 주시는 분

늘 새롭게 해 주시는 분

주님은 공의를 세우시는 분

억눌린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변호하시는 분

모세에게 주님이 뜻을 알려 주신 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님의 행적을 알려 주신 분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사랑이 그지 없으신 분.

두고 두고 꾸짖지 않으시는 분. 노를 끝없이 품지 않으시는 분. 우리 죄와 잘못을 그대로 갚지 않으시는 분.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주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도 크신 분.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반역을 우리에게서 멀리 치우시는 분. 우리를 자녀 같이 가엽게 여기시는 분. 주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신 분. 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알고 계시는 분.

15-22 인생은 풀과 들꽃 같이 시들고 지고 사라진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하신 주님의 사랑과 의로우심이 자자손손 함께 한다. 주님의 언약을 지키고 법도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다스림, 하나님나라가 영원하다. 주님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이야 말로 천사와 같으며 주님의 용사들이라고 부르신다. 주님의 군대라고 부르신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주님께 지음받은 대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모든 곳에서 주님을 찬송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과 비교하면 우리는 한갓 티끌이라고 노래한 시인은, 인생이 티끌보다 낫다고 하여도 시들고 지고 사라질 풀과 들꽃에 불과하다고 노래한다.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잇대어 살기 위해서는 주님을 경외해야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주님의 언약을 지키고 주님의 법을 기억해서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라고 시인은 풀어간다. 곧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영원에 속해 사는 것이다. 시인은 천사들과 같이 주님의 용사로 주님의 군대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주님께 지음받은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라고 하신다.

신명기 33:18-29

신명기 33:18-29

모세의 지파별 축복이 이어진다. [18-19 스블론 해상무역으로 번성하고 잇사갈을 부자가 된다. 그들은 외국 사람을 초청하여 의의 제사를 드린다. 해상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보물을 찾는다. 20-21 갓 지파는 땅을 넓힌다. 사자가 경계를 정하듯 가장 좋은 땅을 차지한다. 지도자의 역할을 한다. 주님의 공의를 지키고 율법에 복종하였기 때문이다. 22 단피파는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사자 새끼와 같다. (사자와 같다고 표현한 갓의 축복을 상속받는다는 뜻이 아닐까한다.) 23 납달리 지파는 은혜를 풍성히 받는다. 은혜는 주님께서 주시는 복이다. 24-25 아셀 지파는 다른 어느 지파보다 복을 더 많이 받는다고 축복한다. 축복받은 형제들에게 귀여움을 받기 때문이다. (복중의 복은 복 받은 형제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다 성문 안에서 안전하다.] 

26-29 모세는 이스라엘을 지파별로 축복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신이 없다고 한 번 더 강조한다. 하나님만이 도움이시며, 피난처가 되시며, 원수를 쫓아내시고 진멸시키라고 명하시는 분이시다. 풍성한 땅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안전하게 살게 하신다. 이스라엘이 받은 복이다. 주님께서 구원하신 백성들이 누리는 복이다. 구원하셨을뿐만 아니라 방패시며 돕는 분이시 영광이시며 원수를 짓밟게 하시는 분이시다.

//번성하고 부자가 된 스블론과 잇사갈 지파가 외국 사람을 초청하여 의의 제사를 드린다는 축복과 갓 지파가 가장 좋은 땅을 차지하고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되는 이유를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고 율법에 복종하였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와 닿는다. 이스라엘 자손이 받는 복이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한다고 할 때, 예배(의의 제사)와 예배적 삶(공의를 지키고 율법에 복종하는 것)이 곧 복이 된다. //아셀지파는 다른 어느 지파복다 복을 더 많이 받는데,  아셀 지파가 받는 복이 형제들의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복중의 복은 믿음의 형제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믿음의 형제들과 사귈 때 안전하다. //이 모든 복 위에 임마누엘이 있다. 임마누엘이 평화와 안식을 준다.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세는 요압 땅에서 죽었다. 34장의 에필로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을 교훈한다. 결국은 임마누엘로 귀결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28

신명기 33:1:17

신명기 33:1:17

모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음과 같이 축복한다. [2주님께서 오시고 떠오르시고 비추신다. 수많은 천사들이 주님을 옹위하고 주님께서는 활활 타는 불을 들고 계신다. 3주님께서 뭇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 주의 백성이 주님 발 아래 무릎을 꿂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4 주의 백성은 율법을 지킨다. 율법이야 말로 이스라엘이 가진 소유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보물이다. 5 주님께서 이스라엘 지파들의 왕이 되셨다. 6. 르우벤은 수는 적으나 잘 살게 하여 주시고 절대로 망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7 유다가 살려 달라고 부르짖을 때 들어주시고, 유다 지파가 다른 지파들과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유다를 대신하여 싸워 주십시오. 유다의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유다를 도와 주십시오. 8-11 레위 지파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 주십시오. 주님의 언약을 성실하게 지켰고, 주님의 백성에게 주님의 바른 길을 가르치며 주님의 율법을 가르치며 주님께 제사를 드리는 그들이 강해지도록 복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주십시오. 그들과 맞서는 자들을꺾으시고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12 베냐민 지파는 주님 곁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온종이 지켜 주십시오. 주님이 업어 주십시오. 13-17 요셉지파의 땅에 복을 내려 주십시오. 풍성한 수확을 주십시오.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주님, 선하신 주님이 그들의 땅에 복을 베풀어 주십시오. 요셉이 형제가운데 지도자(장자)였으니 장자의 복을 주십시오.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이 번성하게 하옵소서.]

//모세가 말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은 율법이다.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각각의 지파를 축복하기 전에 율법을 청종하라고 말한다. 이 보물이 있어야 축복이 의미가 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 때 복을 받는다.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성도에게 최고의 보물은 말씀과 성령이다. 말씀과 성령이 임마누엘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심지어 어리석다고 말한다.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하는데 보혜사 성령께서 행할 수 있는 깨달음과 용기를 주신다. 예수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성도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이 아니면 다른 복은 오히려 저주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28

신명기 32:34-52

신명기 32:34-52

34-43 원수들이 마실 독주는 주님이 숨겨 놓았던 것이다. 주님이 원수 갚을 때 쓰실 것이다. 원수 갚는 것은 주님의 일이다. 원수들이 멸망할 때가 가깝다. 원수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주님은 주의 백성도 심판하신다. 그러나 주님은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주님은 원수들의 신들, 원수들이 피난처를 삼던 반석이 어디 있는지 반문하신다. 원수들이 제물을 바치던 신들이 어디 있는지 비웃으신다. 마침내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이심을 알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밖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다. 주님만이 생명을 주관하신다. 아무도 주님이 하시는 일을 막지 못한다.

주님은 친히 심판자 재판관이 되셔서 원수들을 벌하실 것이다.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원수들이 묻힌 핏값을 갚으실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실 것이다. 원수들을 벌하시고 주님의 백성이 지은 죄는 속하여 주신다.

44-47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 모든 노래를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온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노래와 증언을 마음에 간직해 두고, 자녀들에게 가르쳐, 모든 말씀을 지키게 하라고 말한다. 율법은 빈말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말씀을 순종하라. 순종해야만 약속의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이라고 거듭 당부한다.

48-52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느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느보산에서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믿음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굳이 한 번 기록하신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율법은 빈말(헛된 일)이 아니라 생명이다(47). 그러나 율법 자체가 생명일 수는 없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다. 구약의 정신이다. 신약에 와서는 믿음은 빈말이 아니라 생명이다 하고 적용할 수 있다. 믿음자체가 생명일 수는 없다.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생명이다. //요한의 가르침을 소환하자. 요한은 복음서 (요5:24) 에서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을 옮겨갔다.’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그리고 요한1서 (요일3:14) 에서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고 적용한다. 요한은 믿음을 형제사랑과 동일시 한다. 따라서 율법이 생명이고 믿음이 생명이듯이 형제사랑이 생명이다. (율법을 지키는) 생명이 있어야 약속의 땅에서 사는 것이듯, (형제사랑하는)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느보산에서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다는 기록도 약속의 땅을 지리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증거다.  지리적 약속의 땅보다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세가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육신이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영원한 순종에 들어간다는 뜻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주님이 모세를 더 이상 믿음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못하는 곳으로 데려가신다. 그래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