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3-13 (공동번역) 읽기
3 바울 일행은 자신들의 전도사업이 비난받지 않도록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공공장소에서 고성방가로 전도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바울 일행의 말을 곱씹어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4-5 바울 일행은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 일을 한다. 그래서 환난과 궁핍과 역경도 잘 참았다. 심지어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도 겪어내야 했다. 심한 노동을 하고 잠을 못자고 굶주리면서도 그 고통을 잘 견디어 냈다. //하나님의 일에 무슨 복이 따르는가? 인내의 열매밖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자네 이 길을 가려는가?’ 자문하게 된다. 특별히 심한 노동을 하면서 살았다. 후원을 받은 것은 전문 사역자(목회자나 선교사)가 마땅히 누려야 할 특권이 아니다. 6-10 바울 일행은 순결과 지식과 끈기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과 꾸밈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고 밝힌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그들은 두 손에 정의의 무기를 든다.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아간다. 그들은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게 산다. 이름 없는 자 같으나 하늘에 이름을 올린자로 산다. 죽은 것 같으나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는 영생을 누린다.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전도자들이 두 손에 정의의 무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많은 단어 중에 하필이면 ‘정의’를 들었다고 했을까? 복음은 개인적이지 않다. 공동체적이다. 관계적이다. 복음이 공동체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지 못할 때 죽은 것이 된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겸손하고 굶주린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이 있다.
11-13 바울은 고린토 교우들에게 숨김없이 말한다. 바울은 고린토 교우들에게 마음을 연다. 더 이상 (어떤?) 고린토 교우들처럼 마음을 닫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영적) 자녀같은 고린토 교우들도 자신들과 같이 마음을 활짝 열라고 권면한다. //마음을 연다. 그것도 활짝 연다. 복음의 포용성이다. 자비다. 긍휼을 베푸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정의는 심판의 도구가 아니다. 정의는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실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