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1-6

느헤미야 4:1-6 (공동번역)

느헤미야(우리)가 돌아와 성을 쌓고 있다는 소식에 유다인들을 우습게 보고 있었던 산발랏은 화가 났다. 산발랏은 자기 일족들과 사마리아 세력가들에게 성벽을 보수하는 사람들을 ‘유다 놈들’이라고 부르며 빈정거렸다. 암몬 사람 토비야도 ‘여우만 올라가도 무너질 성을 쌓는다’ 하고 맞장구쳤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조롱받고 있다고 (우리) 하느님께 토로(기도) 했다. 그들의 악담을 그들에게 도로 쏟아달라고 기도했다. 그들이 남의 나라에 끌려가서 수모를 받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성을 쌓는 자신들을 약만 올리는 그들의 못된 죄를 덮어주지 마시길 기도했다.
유다사람들은 기어이 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성벽 보수를 계속했다. 성벽은 허물어지는 일 없이 반쯤 올라갔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4/

//성벽 보수에 대한 반대와 빈정대는 소리를 들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기도한다. 성벽보수는 개인의 사명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이뤄가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짧은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우리’라는 단어를 여러번 반복한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도 우리가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공동체적 기도다. //나의 기도생활에는 과연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차지하는지? 나의 기도만, 개인적인 기도만 하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우리’의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공동체를 향한 우리 아버지의 뜻을 알아가야 한다. ‘우리’를 위해 내 뜻으로만 기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족을 넘어, 다락방과 교회 공동체와 국가와 열방을 품는 기도가 절실하다. //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도록 말씀과 성령으로 가르쳐 주소서.

느헤미야 3:16-32

느헤미야 3:16-32 (공동번역)

샘터로 나가는 문에 이어지는 부분은 아즈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그 옆은 바니의 아들 르훔이 레위인들을 거느리고, 그 옆은 크일라 반 구역장인 하사야가 자기 구역을 대표해서, 그 옆은 크일라 반 구역장이었던 헤니닷의 아들 바왜가 일가 사람들을 데리고, 그 옆은 미스바 구역장이었던 예수아의 아들 에제르가, 그 옆은 자빼의 아들 바룩이, 그 옆은 하코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인 므레못이, 그 옆은 예루살렘 둘레에서 사는 사제들이, 그 옆은 베냐민과 하숩이 자기들 집 앞부분을, 그 옆은 아나니야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자리야가 집 옆을,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그 옆은 우재의 아들 발랄이, 그 옆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성전 막일꾼들이 살고 있는 곳까지, 그 옆은 드고아 사람들이, 말다니는 문부터는 사제들이 저마다 제 집 앞 부분을, 그 옆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제 집 앞을, 그 다음은 동문 수위였던 스가니야의 아들 스마야가, 그 옆은 셀레미야의 아들 하나니야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그 옆은 베레기야의 아 므술람이, 그 옆은 금장이 말기야가 성전 막일꾼들과 상인들 숙고가 있는 성 모퉁이까지, 그리고 성 모퉁이에서 양문까지도 금장이들과 상인들이 보수했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3/

//어제에 이어 성벽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열거된다. 자기 집 앞과 옆을 보수한 사람들이 있었나 하면, 자기 구역에서 연장된 부분까지 보수한 사람들도 있었다. 성막 막일꾼들이 살던 곳도 보수되었다고 한다. 성전 막일꾼들은 백정과 같은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신분세탁을 하고 눌러 앉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르드개와 느헤미야도 귀환에 불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성전 막일꾼들 중에는 귀환에 참여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것이, 그것이 비록 제사장들처럼 제사를 드리거나, 레위인들처럼 찬양을 하는 등 고상하게 보이는 일이 아니라 힘겨운 노동이어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자 귀환했다. 그들은 성전 막일꾼으로서의 한 날이 악인의 장막에서의 호의호식하는 천 날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시편 84편 10절의 노래가 허사가 아님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느디님 사람들(성전 막일꾼)과 같이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감사하며 만족하게 하소서.

느헤미야 3:1-15

느헤미야 3:1-15 (공동번역)

성벽재건이 순조롭게 진척되었다. 대사제 엘랴십은 사제들을 거느리고 양이 다니는 문을 세워 하느님께 봉헌했다. 양문 옆에 잇닿은 부분은 예리고 사람들이, 그 옆은 이므리의 아들 자구르가, 물고기문은 하쓰나아 일가가, 그 옆은 하코스의 손자요 우리야의 아들인 므레못이, 그 옆은 므세자브엘의 손자요 베레기야의 아들인 므술람이, 그 옆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그 옆은 드고아 사람들이 (드고아 사람들 가운데 일부 유력자들은 상전의 말대로 공사에 가담하지 않았다.), 신시가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디야의 아들 므술람이, 그 옆은 유프라테스 서부지방 총독의 자리가 위치한 곳까지 기브온 사람 믈라티야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을 데리고, 그 옆은대장장이 하르하야의 아들 우찌엘이, 그 옆은 향료 제조업자 하나니야가, 그 옆은 예루살렘 절반의 구역장이었던 후르의 아들 그라이야가, 그 옆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그 옆은 하삽니의 하들 하투스, 그 옆은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하숩이, 그 옆은 예루살렘 절반의 구역장이었던 할로헷의 아들 살룸이 자기 딸들과 함께, 골짜기로 나가는 문은 하눈과 자노아의 주민들이, 쓰레기를 쳐내는 문은 벳하께렘 구역의 장이었던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샘터로 나가는 문은 미스바 구역장이었던 골호재의 아들 살룸이 보수하고 장식했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3/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 여러 가문의 후손들,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 대장장이의 후손과 향료제조업자, 예루살렘 구역장의 후손들, 그리고 살룸의 딸들과 같은 여자들, 자기 집 앞의 성벽을 보수한 사람까지 다양했다. //이들 보수를 맡은 구역은 일터와 혹은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이었던 것 같다. //느헤미야는 각 구역을 중수/재건한 책임자의 이름들을 거론한다. 그러나 실제 참여한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이렇듯 성경에 나오는 이름은 가문을 대표하고 공동체를 대표한다. 다시 말해 성벽재건은 이들의 개인적인 수고의 열매가 아니다. 소속된 허다한 무명인들의 수고로 성벽이 보수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도 무수히 많은 성도들의 수고로 세워져 간다.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믿음이 더 큰 것도 아니며, 이름이 안 보인다고 하찮은 역할도 아니다. 모두 다 필요한 존재들이다. //하나님나라는 2차원 직쏘퍼즐이 아니라 레고블럭퍼즐이다. 2차원 직쏘퍼즐은 한 조각 한 각이 모두 같은 비중이다. 그러나 레고퍼즐은 다르다. 수 많은 조각들 중에는 안쪽에 꽂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화려한 조각도 있고 단순한 조각도 있고 크기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 조각이 자기 자리에 없으면 레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렇듯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3차원 레고작업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체들도 있지만 모든 지체들이 다 소중하다. 하나님의 눈에는 성도 모두가 2차 직쏘퍼즐의 한 조각 한 조각처럼 다 소중하게 보일 것이다. //오늘도 나의 위치에서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느헤미야 2:11-20

느헤미야 2:11-20 (공동번역)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께 받은 사명과 예루살렘에 온 목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몇 사람과 밤에 예루살렘을 돌아봤다. 느헤미야는 짐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돌아보았다. 나귀가 지날 수 없는 곳에서는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돌아봤다. 예루살렘 관리들은 느헤미야가 밤에 어디가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몰랐다. 느헤미야가 관리들과 동행하지도 알리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흘이 지나)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돌아본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어서 빨리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아서 다시는 남에게 수모받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2/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방문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포로귀환 후에도 여전히 황폐한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상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아뢴 기도가 사명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감상에서 나온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서너달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다. 결국 예루살렘을 방문해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느헤미야의 뜻이라기 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도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살피는데 사흘이면 충분했다. 친척들의 보고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느헤미야의 방문을 언짢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신중을 기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다시는 남에게 수모를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유대인들에게 독려한다. 느헤미야 개인이 받은 사명을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사명이 되도록 했다. //개인이 받은 사명은 공동체적인 사명과 부합해야 한다. 성도의 사명은 교회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개개인의 사명으로 교회 공동체가 바로 서기를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나의 사명을 함부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느헤미야 2:1-10

느헤미야 2:1-10 (공동번역)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온 형제로부터 소식을 들은 기슬레우월에서 니산월 사이에는 세개의 달이 끼어 있다. 그러니 2장은 서너달이 지난 후의 일이다. 느헤미야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금식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식음을 전폐한 금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 임금도 안색으로부터 느헤미야 마음의 걱정을 알았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모르실리 없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르닥사싸 황제의 입을 빌어 느헤미야의 소원을 묻는다. 느혜미야는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하고 황제의 귀를 통해 유다에 가서 선조들의 뼈가 묻힌 성읍을 다시 세우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소원을 아뢴다. //하나님께서는 황제와 황후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황제는 느헤미야에게 다녀오라고 허락했다. 느헤미야는 한 술 더 떠, 황제에게 자신이 가는 일이 공무가 되게 해달라는 친서를 받아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형통하게 해 주신 덕분에 황제가 자신의 청을 들어주었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러나 유다에는 느헤미야의 일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그의 심복 암몬 사람 토비야는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사람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온(왔)다는 소식에 몹시 언짢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느헤미야는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까?

https://quietwaters.blog/2019/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