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9-21

요한복음 3:9-21 (공동번역)

니고데모는 어떻게 성령으로 새로 날 수 있는지 물었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르느냐고 반문하신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세상 일을 말하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고 반문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고 하셨다. 구리뱀을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래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증거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요3:9-21
//축구나 야구를 좋아하는 나는 가끔 외국경기를 볼 때 관중석에서 John316 을 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우리동네에는 John316 이라는 헤어숍도 있다.) 나름 복음의 메세지를 전하려는 신도의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고려한다면 요3:16은 성령으로 새로 나야만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복음은 경기장 관중석에서 요316 팻말을 들고 있는다고 전할 수 있는 단순한 메세지가 아니다. 물론 나처럼 저게 무슨뜻이지 하고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야 이해할 수 있는 구절임에 틀림없다. //요3:16절이 복음인 이유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모두 죄인으로 판결 받기 때문이다. 요한은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고 선언한다. 최종심판은 마지막날에 이루어지겠지만 진리를 따라 살지 않는다면 이미 죄인으로 판결받은 것이다. 요한은 여기서도 믿음을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라고 규정한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의 믿음에 예수께서 믿음으로 대해주셔야 나의 믿음이 맹신이 아닌 의미있는 믿음이 된다. 내가 진리를 따라 살아갈 때 주님은 나에게 믿음으로 대해주시리라. 서로에게 신실함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죽어 마땅한 (아니 죽어있는)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할 때다. 하나님의 믿음에 우리도 믿음으로 반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