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9-18 (공동번역)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유다인이면서 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지 물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그 여자가 자신에게 먼저 요청을 했을 것이며, 그러면 그 여자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것이라고 대답하셨다. 그 여자는 우물은 깊고 두레박도 없는 예수께서 어디서 샘솟는 물을 주시겠다는 말씀인지 반문했다. 그리고 이 우물은 조상 야곱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운 우물인데 예수께서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냐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사르겠지만 자신이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소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그 여자는 예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그 물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했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그 여자가 남편이 없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없는 말이기는 하나, 그 여자에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그 여자의 남편이 아니니 그 여자가 바른 대로 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요4:9-18
//누구에게나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는 없다. 그렇다면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없어야 한다. 물론 쉽진 않다. 아니 억수로 어렵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어야 가능하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의 말씀에 거하는 것이요 (요8:31),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 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요15:7)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려면, 예수가 누군지 바로 알아야 한다. 예수가 누군지 모르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우상신에게 비는 것과 다를게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대신 아버지 하나님께 구해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연약한 존재다. //예수께서는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육신의 갈급함을 해결하는 물이 아니라 영혼의 해갈에 필요한 생수임을 아셨다. 예수께서 생수에 대해 말씀하셨어도 한 사마리아 여인은 여전히 육신의 생수를 구한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남편 이야기를 꺼낸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한다. 예수께서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첫 남편이 죽자 동생들을 차례로 남편으로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음욕을 채우기 위해 다섯 남자를 만난 것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다섯 형제에게 차례로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남은 시동생이 성장하기까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있듯이 사마리아 인이 어쩌면 율법을 더 문자적으로 실천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정죄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신다. … 사마리아 여인은 이랬든 저랬든 사회적 약자인 과부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