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7

누가복음 2:1-7 (공동번역)

1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호구조사령을 내렸다. (2 첫 호구 조사를 하던 때, 시리아에는 퀴리노라는 사람이 총독이었다.) 3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본 고장에 등록하러길을 떠났다. 4 요셉도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이 태어난 고을이고 요셉은 다윗의 후손 이다.) 5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다. 그 때 마리아는 임심중이었다. 6 베들레헴이 머물러 있는 동안 산달이 되었다. 7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 여관에 그들이 머물 방이 없어서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눅 2:1-7
//로마 황제 아구스도, 시리아 총독 구레뇨 모두 역사에 남아 있는 이름이다. 예수는 역사 속으로 오셨다. 다만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이 되었던 때는 AD 6년 경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의 탄생시점보다 후대다. 예리한 의사 누가가 이점을 놓쳤을까? 구레뇨가 첫호구 조사를 하던 때에는, 아마도 구레뇨가 총독서리이거나 전임 총독 아래서 호구조사를 담당하던 책임자였고 AD 6년경에 정식 총독으로 임명되었다고 추론한다면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부부는 호구조사를 위해 굳이 베들레헴을 가야했을까? 문중의 땅이 베들레헴에 있었기 때문이다. 족보상 요셉도 유다 가문이 분배받은 땅 중에서 다윗가문이 분배받은 지목에 대한 권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한국식으로 말하면 요셉은 다윗 가문의 종손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관에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다.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 요셉부부는 여관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문중/친척집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아니면 나그네를 환대한 한 집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관에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다는 것은, 그들이 머문 곳에 해산을 위해 준비된 방(객실)이 따로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당연히 본문의 여관은 오늘날의 호텔은 아니다. 기껏해야 주막정도다. 이런 곳에서 해산할 곳(객실)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왕이나 부자들이 해산하는 객실(여관방)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객실은 꿈도 못꾸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가축이 해산하는 곳에서 태어나셨다. (성탄절 성극에서처럼, 돈은 있는데 만실이어서 객실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늘 보좌에서 태어나셔햐 할 분이 우리를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가장 비천하게 이 땅에 오셨다. ////우리를 소중히 여기셔서 이 땅에 오셨다.

누가복음 1:26-38

누가복음 1:26-38 (공동번역)

엘리사셉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나자렛 동네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게 하셨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를 했다.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천사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자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그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말을 든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눅1:26-38
//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마리아는 천사의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궁금히 여겼다. 주님께서 “용승아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하고 읽어 본다. 물론 마리아 처럼 놀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 역시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실 것을 궁금해 하며 기대하게 된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같은 반응을 해야 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믿고 순종해야 한다. 임마누엘을 누리는 길은 성령이 나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복음의 능력)이 나를 감싸 주실 때다. 바울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리스도로 옷입는 삶이다. 성령충만이다. ////주의 성령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아멘

미가 5:2-9

미가 5:2-9 (공동번역)

2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은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 것 없으나, 나(하느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 혈통으로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간다. 3-6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신다. 남은 겨레(민족)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선다. 야훼의 힘을 입고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한다. 그의 힘이 땅끝까지 미쳐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 아시리아가 쳐들어 와 이 땅을 짓밟을 때 우리는 목자 일곱과 장군 여덟을 세워 맞설 것이다. 일곱 목자와 여덟 장군이 아시리아를 칼로 다스린다. 칼로 니므롯 땅을 다스린다. 아시리아가 쳐들어와 나라를 짓밟을 때 야훼께서 우리를 아시리아 손에서 살려내신다. 7-9 살아남은 야곱의 후손은 뭇백성 가운데 끼어 살며 야훼께서 내리는 이슬과 가랑비로 사람이 기우제를 드리기 전에 기다리는 일 없이 때가 되면 내리는 비가 된다. 한편 살아 남은 야곱의 후손은 뭇백성가운데 끼어 살며 짐승의 왕 사자와 같이 이리저리 오가며 양 떼 가운서 이리저리 오가며 짓밟고 찢어발겨도 아무도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한 번 손을 들어 원수를 치며 적군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미가5:5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 아시리아가 쳐들어와 이 땅을 짓밟을 때, 우리는 목자 일곱을 세워 맞서리라. 장군 여덟을 세워 맞서리라’ 공동번역

//이 땅에서 메시야의 나라의 평화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앗수르가 쳐들와 와 이 땅을 짓밟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해도 고난도 있고 박해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로마서 말씀대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우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꿈꾸며 산다. 혼자가 아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일곱이요 여덟이다. //십자가 앞에서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질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혼자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임마누엘로 평안을 누리신다고 말씀하신 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고 하고 말씀하셨다. 일곱 목자 여덟 장군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신다. 진정한 평화는 임마누엘이다. //성탄을 기념하는 주간이다. 우리도 세상에서 때를 따라 내리는 비처럼 이 땅에 사랑을 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도 세상에서 악에 대하여 젊은 사자처럼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임마누엘을 누리며 사랑을 나누며, 또 담대하게 살게 하소서.

로마서 16:17-27

로마서 16:17-27 (공동번역)

17-18 바울은 로마 교우들을 형제라고 부르며 남들을 분열 시키고 죄짓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라고 권한다. 남들을 분열시키고 죄짓게 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네 뱃속을 채우는 사람들이며, 그럴 듯한 말과 아첨하는 언사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자들이다. 19 바울은 로마 교우들의 충성스런 신앙 생활이 사방에 잘 알려져 있어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한다. 로마 교우들이 선한 일에는 현명하고 악한 것에는 물들지 않기를 바란다. 20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께서 사탄을 우리들의 발 아래 굴복시켜 주실 날이 멀지 않았다. 우리 주 예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시기를 빈다. 21 바울과 함께 일하고 있는 디모테오와 친척들 루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드로가 문안한다. 22 이 편지를 받아쓰는 데르디오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한다. 23 바울과 모든 교우를 잘 돌보는 가이오가 문안한다. 재정관 에라스도와 교우 과르도가 문안한다. 24 없음 25 하느님께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 두셨던 그 심오한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심으로써 성도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신다. 26 그 진리는 이제 예언자들의 글에서 명백하게 드러났고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알려져 그들도 믿고 복종하게 되었다. 27 이러한 능력을 가지신 지혜로우신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롬 16:17-27
//바울은 로마서를 마치면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과 다를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은 로마 성도의 순종이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났다고 칭찬했다. 믿음이라는 단어 대신 순종이라는 단어를 썼다. 마지막 세 구절에서 복음이 하나님이 명을 따라 이방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이방사람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다고 적는다. ‘믿고 순종’은 믿음의 순종이다. 두 단어 모두 명사형이다. ‘믿음=순종’의 등식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편지를 마무리 한다. 예수 믿으면의 실체는 예수께 대한 순종이다. 순종을 행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순종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나사로의 죽음에, 예수께서 누이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은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다는 예수께 “예, 주님! 내가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했다. 하지만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의 명령에 마르다는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하고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았다. 믿음은 허사가 아니라 순종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믿음은 예수를 따르는 길이다.

로마서 16:1-16

로마서 16:1-16 (공동번역)
1-2 바울은 겐크레아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교우 페베를 로마 교우들에게 소개한다. 로마 교우들에게 페베를 영접하라고 편지하는 것을 보아 페베가 로마를 방문하는 모양이다. 바울은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성도의 예절을 갖추어 페베를 영접하라고 한다. 페베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주라고 권한다. 페베는 바울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3-4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동지 브리스카와 아퀼라에게 문안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은 생명을 무릅쓰고 바울의 목숨을 살려준 사람들이다. 바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다 그들을 고맙게 생각한다. 5 브리스카와 아퀼라 집에서 모이는 교회 여러분에게 문안해 달라고 전한다. 바울이 친해하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 신자가 된 에베네도에게도 문안한다. 6 로마 교우들을 위해 수고를 많이 한 마리아에게 문안한다. 7 바울의 친천이며 한때 바울과 같이 갇힌 일이 있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한다. 그들은 사도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들로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 신자가 된 사람들이다. 8 친애하는 교우 암플리아도에게 문안한다. 9 그리스도를 위해서 함게 일하는 동지 우르바노와 사랑하는 스타키스에게 문안한다. 10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척 고생을 많이 한 아벨레에게 문안한다. 아리스토불로의 가족에게 문안한다. 11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한다. 교우 나르깃소의 가족 여러분에게도 문안한다. 12 주님을 위해서 애쓴 드리패나와 드리포사에게 문안한다. 주님을 위해서 특별히 수고한 사랑하는 베르시스에게 문안한다. 13 뛰어난 주님의 일꾼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한다.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을 아들처럼 여겼다고 한다. 14 아신그리도와 플레곤과 헤르메스와 바트로바와 헤르마스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다른 교우들에게 문안한다. 15 필롤로고와 율리아, 네레오와 그의 누이동생 올림파스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한다. 16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라고 권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여러분에게 문안한다고 전한다.

롬16:1-16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바울과 생면부지의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역자도 있었고 함께 옥에 갇혔던 감방?동기도 있었다. 친척들,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와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바울의 행적에 고스란히 성취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말이 바울이 문안하는 사람들을 수식하고 있다. //성도의 교제는 할 수만 있으면 거룩한 입맞춤으로, 곧 대면교제로 진행되면 좋겠다. 그러나 떨어져 있어도 편지에 담아, 곧 비대면으로도 가능하다. 주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거룩한 성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지어져 간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임마누엘을 누린다. 믿음의 형제자매들로부터 들리는 소식에 감사하다. 때로는 그들의 아픔까지도…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자매요 어머니다. 성도는 가족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