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10-21

사사기 19:10-21

레위인은 더이상 처가에 머물 생각이 없어 첩과 종을 데리고 밤길을 떠났다. 여부스사람이 사는 예루살렘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날이 많이 기울었다. 종이 여부스성에 들러서 묵어가자고 했으나 주인은 이방민족이 사는 성에 묵을 수 없다며 기브아나 라마까지 가서 묵자고 했다. 그들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까지 갔다. 해는 이미 졌다. 그들이 기브아 장터로 갔니만 누구 하나 그들을 환대하지 않았다. 마침 에브라임 산악지대 출신 한 노인이 그들을 보고 자기 집으로 맞아들여 나그네 일행을 환대했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고대 근동의 문화였다고 한다. 종이 여부스 성에서 묵자고 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 주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방 사람의 성에 머물기보다 좀 더 가서 베냐민지파에 속한 기브아에 가서 묵기로 했다. 그러나 기브아에 도착했으나 아무도 그들을 환대하지 않았다. 동족은 다를 줄 알았는데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동향사람 노인이 그들을 환대했다. //한 노인! 그는 어렸을때부터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풍습이 무너진 기브아 마을에서  어쩌면 그는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사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공동체가 무너지면 미풍양속도 잃는다. (개인주의는 미풍양속을 품지 못하고 새로운 풍습을 낳기 마련이다.) 잃어버린 미풍양속 중 하나가 나그네 환대다. 오늘날에는 사회적 약자를 품는 것으로 적용하자. //종과 한 노인! 그래도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여전히 미풍양속이 남아있다. 이들을 실패자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교회도 못하는 공동체정신을 회복하는 거푸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사기 19:1-9

사사기 19:1-9

이스라엘에아직 왕이 없었던 때다. 에브라임 산 속 깊은 곳에 사는 한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 하나를 데려왔다. 그 첩은 화가나서  그를 버리고 베들레헴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가 넉달을 머물렀다. 남편은 첩을 찾아가 달래어 데려오려고 처가로 갔다. 장인은 그를 기꺼이 마중하였다. 사흘이나 대접받고 나흘째 첩을 데리고 떠나려하자 장인은 하룻밤 더 묵으며 놀다가라고 강권했다. 닷새째 아침 떠나려하자  장인은 다시 음식을 권해 그를 붙잡고, 저녁이 되자 하룻밤 더 묵고 내일 아침 일찍이 떠나라고 권했다.

삿19:1-9

//왕이 없었던 때. 또 다른 레위인 이야기다. 그도 에브라임 산지 깊은 곳에 살았다. 왕이 없었던 때라는 것은 제사장도 없었고 레위인의 역할도 없었던 때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이 레위인은 아마 산 속 깊은 곳에서 개인적인 산당을 운영했을 듯 싶다. 그렇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산당이 잘 됐는지 첩을 들였다. //첩은 왜 화가나서 친정으로 돌아갔을까? 개역개정은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났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문맥상 레위인은 첩에게 이방제사에나 있을 신전행음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늘날로 말하면 산당제사를 빌미로 성적착취 성적학대를 당해서 친정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편이 행음으로 도망친 첩을 (잡아서가 아니라) 달래서 데려오려고 할 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랬던 저랬던 장인은 사위를 환대한다. 딸이 당한 고초를 들었을 것인데도 하루라도 더 대접하려고 했다. 손님대접 문화가 몸에 배어서일까? 그러나 하루라도 더 대접하려는 장인의 바람에 그들은 결국 저녁에 출발하게 된다. 상대방의 일정을 무시하면 그것은 더 이상 대접이 아니다. 오히려 학대에 가깝다. ////종교의식을 빙자한 학대, 환대를 가장한 학대가 왕이 없는 시대, 곧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시대상이다. ㅠㅠ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사사기 18:21-31

사사기 18:21-31

단지파는 미가네에서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훔치고, 제사장까지 데리고 떠났다. 신들을 만들고 사설 제사장을 고용해 점집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한 미가가 뒤늦게 마을 사람들과 단지파를 쫓아왔으나 무장한 단지파를 어찌할 수 없어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야 했다. 단지파는 라이스로 가서 전쟁을 몰라 방심하고 사는 라이스 온 주민을 칼로 쳐죽이고 성읍을 불지른 후 그 땅에 성읍을 재건하여 자리 잡았다. 단지파는 미가에게서 훔쳐간 신상을 세우고 섬겼다. 충격적이게도 미가에서 삯군 제사장으로 일하던 레위 청년이 게르솜의 아들,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라고 밝힌다.

//약육강식의 세상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미가도 단지파도 철저하게 이 원리를 따라 산다. 반대로 태평천하의 라이스 주민은 이 원리의 피해자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원리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세워야 할 영적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삯군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오히려 약육강식을 부추긴다. 한국교회가 봉착한 문제다. ㅠㅠ

사사기 18:1-20

사사기 18:1-20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때, 곧 사사시대다. 단지파가 정주할 땅을 찾고 있었다. 따라서 사사시대  초기다. 단지파는 다섯 정탐꾼을 보내 땅을 찾았다. 그들은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있는 미가의 집이 있는 곳에서 하룻밤 묵었다. 거기서 레위청년을 만나 그가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이 된 자초지종을 들었다. 레위 청년은 정탐꾼들의 요청에 평안히 가라고 여호와께서 보살펴 주실 것이라고 축복했다. 단지파 정탐꾼들은 라이스라는 고립되었지만 평화스러운 마을에 이르렀다. 정탐꾼들은 돌아와 라이스를 치러 올라가자고 보고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셨다고 말했다. 단지파 육백 여명은 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그들은 먼저 미가의 집으로 가서 미가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훔쳤다. 그리고 제사장으로 있던 레위 청년에게 단지파의 제사장직을 제안했다. 그는 단지파와 함께 떠났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사는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평안하고 순탄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니 아무 신상이나 하나님이라고 대접한다. 제사장도 무당이나 점술가처럼 평안의 복을 빌어주는 삯군이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독교저널은 교인의 1/5이 지난 3년 안에 무속을 만났고 1/4은 몸에 부적을 지니고 다니는 것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보고한다. 오늘 본문의 단지파의 행보와 다를게 전혀없다.ㅠㅠ. 왕이 없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다스림, 곧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돈과 평안(안락함)만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라고 기뻐해서는 안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임마누엘만이 오직 은혜요 축복이요 기뻐해야 할 일이다.

사사기 17:1-13

사사기 17:1-13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사는 미가는 어머니로부터 은 천백 냥을 훔쳤으나, 어머니의 저주를 듣고는 자기가 훔쳤다며 돌려드렸다.돈을 돌려받은 어머니는 자신의 저주가 아들에게 돌아갈까봐 즉시 주님께 아들의 복을 빌었다. 미가 모자는 오늘 날로 치면 백억 원대 돈을 아무렇게나 취했다 뱉었다 할 정도로 엄청난 부자였다. //미가의 어머니는 자신의 저주가 아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돌려받은 돈을 하나님께 바친다며 아들을 위하여 신상을 만들었다. 이백냥으로 신상을 만들고 또 신상을 모실 신당을 짓고 에봇과 데라빔을 만들고 아들을 사제로 두었다. 하나님의 복을 구한다면서 이방신들을 모시듯 했다. 저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 각자 자기 소견대로 행한 결과라고 말한다. 이스엘에 왕이 없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다. //한편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레위인 청년. 그는 나그네였다. 가난했다. 그래서 에브라임 산악지대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왔다. 그는 미가의 신당에 연봉 은 열 냥에 집을 제공받는 제사장이 되었다. ///미가가 엄청난 부를 쌓아 올린 것도 마땅히 받아야 할 십일조도 못받아 떠돌이가 된 레위청년도 마땅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니다. 비정상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대신 각자의 신을 만들어 모시고 산다. ㅠㅠ 오늘날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 안에도 부자와 가난한 자, 주류와 비주류가 반목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