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1-40 읽기

21 아기 구주도 팔일째 할례를 받았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이름을 천사가 일러준대로 예수라고 하였다.
22-24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법대로 (출산후 정한 기한이 지난 후, 남자 아이의 경우 할례후 33일째?) 정결예식을 드리러 예루살렘으로 갈 때 아기 예수를 주님께 드리려고 데리고 갔다. 첫 아기는 주님의 거룩한 사람, 곧 하나님께 속했다는 율법의 기록에 따른 것이었다.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로 정결예식에 필요한 희생제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25-35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마침 시므온이라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성령이 임한 시므온은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시므온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고, 때 마침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왔다. 시므온은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 안고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 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백성을 위해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구원은 이방 사람들에게도 계시의 빛이 됩니다.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의 빛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시므온은 요셉과 마리아도 축복한 후, 마리아에게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움을 받았습니다. 비방도 받을 것입니다. 칼이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사람들이 넘어질지 일어설지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지 안할지는) 사람의 마음 속 생각과 같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36-38 성전에는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나이 많은 예언자도 있었다. 그는 칠년만에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안나가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 구주에 대하여 말하였다.
39-40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의 자기 동네,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아기 예수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이 예수와 함께 하였다.

// 성령에 이끌려 사는 시므온과 (말씀을 맡은) 예언자 안나가 구주 예수를 알아 본 첫 두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성령의 해석을 받은 두 사람은 예수가 비록 갓난 아기였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 안나는 금식과 기도로 평생 하나님을 섬겼왔고,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다. (야고보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다시 말해 시므온과 안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보여주신 선한 삶인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본다. 구주 예수를 본다. 말씀을 듣기만 하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실천할 때 임마누엘을 누린다.

누가복음 2:1-20 읽기

1-7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으로 유다 백성들도 호적 등록을 하러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어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정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다. 그곳에서 마리아는 해산할 때가 되어,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은 만원이어서 민박집에 묶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 14 베들레헴 들판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밤에 주님의 한 천사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주님의 영광으로 그들을 비추었다. 목자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 구주가 나셨다. 그는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가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인 것을 보면 내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때 갑자기 많은 하늘 천사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15-20 천사들이 떠나자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천사들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일을 확인하자고 서로 말했다. 목자들은 급히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뉘인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 예수를 보고, 구주가 나셨다는 천사에게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목자들이 그들에게 전해준 말을 이상히 여겼다. 그러나 마리아는 목자들의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히 되새겼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천사가 말한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구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찬미하였다.


// 지난 성탄절 말씀 본문이다. 구주 탄생의 첫 소식이 목자들에게 전해졌다. 그 당시 목자들은 단순히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들 세리들과 더불어 부도덕한 사람들,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삯군 목자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말해 목자들은 일반 백성에게 신의를 잃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구주가 나신 소식은, 법정에서 증인의 자격이 거의 없는 삯군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다. // 이런 목자들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의 전달자로 선택을 받았다. 누가 거짓을 일삼는 양치기 목자들이 전하는 소식에 귀를 기울일까?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천사들의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구체적인 증거를 찾았다. 선한 목자가 99마리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나선 것처럼, 목자들은 양 떼를 들에 두고, 베들레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천사들이 가르쳐준 증거를 찾고 찾아, 결국 구유에 뉘인 아기를 찾아냈다. 그 후에야 천사들이 전해 준, 구주 나신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이때까지 거짓 소식을 전하던 목자들의 말을 사람들이 이상히 여긴 것은 당연했다. // 그러나 마리아는 목자들이 전해 준 소식을 마치 가브리엘이 수태고지 했을 때처럼 마음에 담았다. 목자들은 들에서 천사들의 소식이 들을 때는 두려웠으나, 천사들의 말이 자신들이 본대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기 구주를 찬미하며 돌아갔다.

>> 아기 예수는 역사 속에 오셨다. 누가는 찾고 찾아서 예수께서 역사 속에 오심을 찾아냈다. 아기 예수를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시리야 총독 구레뇨와 나란히 언급한다. 그러나 누가는 아기 구주를 높은 자리가 아닌 낮은 자리에 둔다. 더 높은 곳에서 오신, 더 높으신 분을, 더 낮은 곳, 더 낮은 사람들 가운데 둔다. 성도들이 있어야 할 자리다.

누가복음 1:57-80 읽기

57-58 엘리사벳은 아들을 낳았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이웃과 친척들에게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셔서 아기가 태어났다고 소식을 전했고, 이웃과 친척들은 기뻐하였다. 59-66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아기에게 할례를 행하러 온 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 사가랴를 따서 사가랴 (주니어)라고 부르자고 하였다. 엘리사벳은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친척 가운데도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지 사람이 없다며,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하는 사가랴를 바라 보았다. 사가랴는 서판에다 ‘그이 이름은 요한이다’ 라고 썼다. 모두들 이상히 여겼으나, 그 순간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렸다. 사가랴는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웃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했으며, 이 모든 이야기는 유대 온 산골에 두루 퍼졌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아기 요한이 대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궁금해 했다. 왜냐하면 주님의 보살피는 손길이 아기 요한과 함께 하시는 것을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67-79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 충만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 받으실 분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 속량하신다. 우리를 위해 능력있는 구원자를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 예로부터 거룩한 예언자들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셨다.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 이 언약은 주님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신다. 우리로 평생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다. 아가야(요한아),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다.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죄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치게 될 거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은 해를 하늘 높게 뜨게 하셔서,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80 아기 요한은 자라서 심령이 굳세어졌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고 말을 하기 시작한 사가랴. 그러나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령 충만하여 한 예언의 말씀의 주인공은 아기 요한이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에 따라 오실 구원자, 더 없이 높으신 분이 주인공이다. 긴 찬송시에서 사가랴는 요한은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 더 없이 높으신 분의 길을 백성에게 예비(준비)하도록 가르치는 조연이라고 짧게 예언한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해처럼 하늘 높에 뜨셔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시고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주인공은 주님이라고 찬양한다. //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주님께서 면하게 해주셧음을 알고도 다섯 달 동안 침묵했다. 개인적인 ‘은혜’는 때론 숨겨야 한다고 적용했었다. 내가 받은 은혜가 공동체의 유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차라리 자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적용했다. 누가는 엘리사벳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여섯달 째 마리아와의 만남에서 드러낸다. 그때 성령으로 충만한 엘리사벳의 찬송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자신이 잉태된 것을 먼저 찬양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태중의 아이에게 촛점을 맞추었다. 마지막에야 태중의 요한이 주님을 만난 것으로 기뻐 뛰놀았다고 노래했다. // 엘리사벳은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사가랴가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엘리사벳과 이미 필담으로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엘리사벳도 마리아와 성령 충만한 가운데 교제한 석달 동안의 일을 필담으로 사가랴와 나누었을 것이다. 성령 충만한 사가랴와 성령 충만한 엘리사벳은 아이 요한을 말씀과 훈계로 양육했을 것이다. 누가는 요한이 자라서 심령이 굳세어졌다고 기록한다. 곧 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강건해졌다. 결국 성령 충만했다고 말할 수 있다. // 성령충만의 결과는 ‘나’에게 촛점을 맞추지 않는다. 세례요한 처럼 ‘주님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라는 고백을 하게 한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빈들에 머물러야 한다.

누가복음 1:26-56 읽기

26-39 그 뒤로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36절) 여섯 달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나사렛 동네, 다윗의 가문에 속한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보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한다.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 예수는 위대하게 되고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예수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그 예수가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자신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햇다. 더 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마리아를 감싸 줄 것이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도 늙어서 임신하였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라고 불리던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벌써 여섯달이 되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라고 대답했다. 마리아가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대답하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마리아는 수태고지 후 곧바로 유대 산골에 사는 사가랴의 집으로 가서 엘리사벳에게 문안했다. // 두번째 수태고지는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에게 임했다. 성소에서 섬기던 사가랴는 늙은 부부가 어떻게 임신을 하겠느냐고 불신했지만, 나사렛 동네에 살던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도 임신을 할 수 있느냐고 가능성을 비쳤다. (솔직히 사가랴나 마리아나 같은 반응을 보인 것 같아 보이지만, 천사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천사는 엘리사벳이 임신한 사실을 마리아에게 드러낸다. 엘리사벳이 다섯 달 동안 숨겼던 일이다. 세례요한은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다면, 마리아는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한 후 잉태하게 된다. 이래저래 비슷하면서도 다른 수태고지 사건이다.


40-45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던 태아 요한이 움직였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해서 큰 소리로 마리아를 축복했다. [마리아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다. 마리아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했을 때, 엘리사벳의 태중의 아이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임한 마리아를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라고 부른다. 성령 안에서의 교제는 나이의 많고 적음에 차별이 없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할 성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46-55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축복에 화답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고 할 것 입니다. 전능자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자비하시며,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는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십니다.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며,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그는 자비로우사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 마리아의 노래의 핵심 주님의 자비다. 비천한 자에게 임하는 자비, 주린 사람들에게 임하는 자비, 백성을 도우시는 자비.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주린 자가 복이 있고…


56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쯤 있다가 (나사렛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교제는 결국 태중 요한과 갓 잉태된 예수의 교제라고 할 수 있다.


**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마리아는 천사의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궁금히 여겼다. 2021년을 맞이하며 나도 듣고 싶은 말씀이다. “용승아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마리아 처럼 놀라지는 않을 것이나,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실 것을 기대하게 한다.

누가복음 1:1-25 읽기

1-4 누가는 복음을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 이요, 복음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이야기라고 운을 뗀다. 그리고 누가는 복음을 자기의 말로 정리하여 데오빌로에게 전달하여, 데오빌로로 하여금 복음이 확실한 사실임을 알게 되기를 바라면서 복음을 풀어간다. // 복음은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다. 첫번째 ‘우리’는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사람들이다. 제자들, 사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우리’는 제자들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다. 누가는 이 두번째 ‘우리’에 들어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데오빌로는 세번째 ‘우리’의 한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흘러 온 n번째 ‘우리’의 한사람이다. 복음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우리에게 전해지고 우리가 전해야 할 확실한 사실이다. ‘나’ 중심으로 이해되어서는 결코 안되는, ‘내가’ 주어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복음이다.


5-7 누가는 복음을 레위 사람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가 어떤 사람인지로 시작한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다. 그런데도 그 둘 사이에 늙도록 자녀가 없었다. //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인정 받아도, 자녀가 없는 것은 저주였던 시대였다. 의로운 삶이 세상에서의 형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8-20 사가랴가 제사장 직무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분향하는 동안 주님의 천사에게 수태고지를 받았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라고 하였고, 요한의 출생은 사가랴 부부가 당한 모든 설움을 씻어내는 기쁨과 즐거움이 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기쁨이 될 것이며,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 술에 취하지 않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늙은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증거를 요청했다. 천사는 자신은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요,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하는 것이 증거라고 하였다. // 가브리엘 천사는 ‘그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내 말을 네가 믿지 않았으므로’ 라고 말을 하며 사가랴가 요청한 증거로 벙어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가랴는 자신에게 주어진 확실한 수태고지에도, 그 때가 되어 그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침묵해야만 했다.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사가랴에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떠벌이지 말라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은 ‘나’에게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나’중심의 간증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침묵이 필요할 때가 많다. 복음은 ‘나’ 중심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21-25 백성은 사가랴가 성소에 오래 머물자 이상이 (놀랍게) 여겼다. 더군다나 사가랴가 성소에서 나와서도 말을 하지 못하자 환상을 본 줄로 알았다. (사람들은 사가랴를 다구치지 않았고) 사가랴는 제사 당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사벳이 임신했다. 엘리사벳은 불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당하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주님께서 면하게 해주셨음을 알고도 다섯 달 동안은 침묵했다. // 개인적인 ‘은혜’는 때론 숨겨야 한다. 은혜 받았다는 나의 간증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내가 받은 은혜가 공동체의 유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차라리 자랑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의 건강에 좋다고 적용한다.


// 내가 받은 복음이 ‘우리’의 복음이 되게 하소서.